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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프랑스 와인, 맛을 지키고 싶다면[광화문에서/김윤종]

입력 | 2020-07-30 03:00:00


김윤종 파리특파원

주말에 가족과 함께 프랑스 남부 보르도 지역을 찾았다. 와인 농장을 견학하기 위해서였다. 방문한 곳은 레드와인 명산지인 메도크, 생테밀리옹 지역을 지나 보르도에서 남동쪽으로 40km 떨어진 소테른이다.

소테른은 다른 보르도 지역과 달리 단맛이 강한 화이트 와인으로 유명하다. 보통 포도나무 한 그루에서 와인 한 병이 나오는데, 소테른 와인은 한 그루에서 한 잔만 생산할 수 있다. 기자가 방문한 38만 평 규모의 농장에 소속된 소믈리에 멜리사 씨는 시설을 돌며 소테른 와인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인근 강에서 발생한 안개로 인해 포도 껍질에 곰팡이가 생깁니다. 곰팡이가 수분을 빨아들여 포도 알갱이가 시들지만 당분이 응축돼 소테른 와인 특유의 풍미가 생깁니다.”

그러나 한 방문객이 ‘지구온난화와 와인’에 대한 질문을 하자 멜리사 씨는 “아, 그 문제는…”이라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큰 숙제”라며 한숨을 쉬었다. 프랑스 유명 와인 산지마다 와인 맛의 변화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점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프랑스 국립농업연구소(INRA)에 따르면 적절한 햇빛으로 포도나무의 광합성이 활성화돼야 포도가 잘 익고 포도당이 많아진다. 이로 인해 당도와 알코올 도수가 높아져 품질 좋은 와인이 된다. 하지만 기온이 지나치게 높으면 포도 내 수분이 손실돼 와인의 맛과 향이 떨어진다. 포도밭에서 만난 농부들은 “좋은 와인은 양조장이 아니라 땅 온도, 기후에 좌우된다”고 했다.

보르도 와인의 주요 포도 품종인 메를로는 기후 변화로 멸종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마저 들린다. 실제 이상고온으로 지난해 프랑스 와인 생산량은 12% 감소했다. 4대째 와인을 만들어온 레미 쿠페 씨는 “와인 맛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효모를 사용할 정도”라고 밝혔다. 보르도에서는 기존 재배 품종 외에 달라진 기후에 적응할 수 있는 포도 품종을 추가하자는 주민투표까지 이뤄졌다.

프랑스 와인은 전 세계 와인의 16%를 차지한다. 수출액만 연간 76억 유로에 달한다. 프랑스의 한 지인이 “와인은 음료가 아닌 프랑스의 상징”이라며 “프랑스 와인이 맛을 잃는 것은 프랑스가 문화를 잃는 것”이라고 우려한 이유다.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후 변화로 50년 후에는 이탈리아, 스페인 등 세계 주요 와인 산지 중 80%에서 현재 수준의 포도 재배가 어려울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농장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8일 세계기상기구(WMO)의 발표가 생각났다. 최악의 경우 5년 안에 지구 온도가 1.5도 상승한다는 내용이었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2100년까지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화 시대 이전보다 최대 3.4도 올라가 감염병 증가, 극한기후, 해수면 침수 등 환경 재앙이 닥칠 것이란 경고도 제기됐다.

이런 피해에 비하면 와인 맛의 변화는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해수면 상승, 전염병 폭증이 나와 상관없는, 먼 미래의 일처럼 공감되지 않는다면…. 오늘 저녁 마실 와인 한 잔의 풍미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쓰레기 줄이기, 에너지 절약과 같은 생활 속 실천을 해보면 어떨까. 작은 변화가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
 
김윤종 파리특파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