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 도심 밀집생활 피해 교외로 이동… 재택근무에 맨해튼 집값 하락 뉴욕 교외는 부동산 매입 열기 “일시적” vs “지속” 전망 엇갈려
코로나19의 여파로 미국 뉴욕 맨해튼의 집값과 월세가 하락세를 이어가는 반면에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가능한 주변 교외 지역의 인기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유재동 뉴욕 특파원
미국 뉴욕주 허드슨밸리에서 부동산 중개사 ‘업스테이트다운’을 운영하는 딜리스 베리 씨. 그는 뉴욕시 맨해튼에서 북쪽으로 150km 정도 떨어진 이곳에 이렇게 많은 매수 문의가 몰린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뉴욕시에 살던 사람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피해 한적한 교외에 집을 얻으려고 앞다퉈 몰려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베리 씨는 기자에게 “집을 사려는 사람은 많은데 상당수가 사지 못하고 돌아간다. 코로나19 전에는 100만 달러(약 12억 원)짜리 집을 파는 데 반년이 걸린 적도 있다. 요즘에는 매물이 나오면 1주일 안에 계약이 완료된다. 임대 계약은 당일 바로 체결된다”며 혀를 내둘렀다.
일반인에게는 336억 원도 엄청나게 비싼 가격이지만 더 놀라운 점은 2015년 같은 아파트가 4700만 달러(약 564억 원)에 팔렸다는 사실이다. 불과 4년 만에 가격이 40% 이상 하락했다. 이곳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만다린오리엔탈 빌딩의 펜트하우스 역시 최근 2300만 달러(약 276억 원)에 팔렸다. 역시 9년 전보다 약 25% 떨어졌다.
반면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가능한 뉴욕 교외는 도시인의 피난처로 인식되면서 때 아닌 호황을 누린다. 허드슨밸리와 뉴욕주의 유명 휴양지 햄프턴, 뉴저지주, 코네티컷주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이것이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 현상인지, 장기 추세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 감염 공포·재택근무로 맨해튼 하락세 뚜렷
뉴욕 맨해튼의 한 아파트에 세입자 모집을 알리는 안내 간판이 붙어 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미 부동산업체 더글러스엘리먼에 따르면 6월 맨해튼 임대 시장에는 1만 채 이상의 아파트가 나왔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5% 급증했다. 늘어나는 공실을 메우려면 집주인은 임대료를 내릴 수밖에 없다. 부동산업계에서는 현재 뉴욕 아파트 월세가 코로나19 이전보다 약 10% 떨어져 있다고 평가한다.
한 중개인은 “과거 인기 있던 맨해튼 중심부 부동산의 임대료가 가장 많이 떨어졌다. 업무 및 상업용 부동산이 밀집돼 있고 유동 인구도 많다 보니 사람들에게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높다고 여겨진다”고 설명했다. 반면 맨해튼 중심부에서 멀어질수록 임대료 하락폭이 크지 않거나 일부는 오히려 임대료가 조금 올랐다고 덧붙였다.
올해 2분기(4∼6월)에 거래된 맨해튼 아파트의 중위가격(한 줄로 세웠을 때 가운데 값)은 1년 전보다 18% 떨어진 100만 달러(약 12억 원)였다. 6월 서울의 한강 남쪽 11개 구 아파트 중위가격(11억6345만 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코로나19로 오프라인에서 집을 보러 다니는 게 어려워지면서 6월 아파트 매매 건수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6% 급감했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보편화한 것도 맨해튼 부동산 가격 하락에 일조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과거에는 미국에서도 출퇴근 시간을 아끼려고 직장과 가까운 부동산을 선호하는 근로자가 많았지만 재택근무로 ‘굳이 직장 가까운 곳에 집을 얻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늘었다는 의미다. 온라인 부동산정보 사이트 스트리트이지의 낸시 우 이코노미스트는 “통근하기 편리한 곳이나 맨해튼 한복판에 사는 것이 세입자들의 우선순위에서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 도심 피해 교외로…서비스 물가까지 상승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맨해튼에서 거의 평생을 살아온 샐리 피셔 씨는 올해 5월 가족과 함께 뉴욕주 사우스햄프턴의 세컨드하우스로 거처를 옮겼다. 맨해튼에서 차로 약 2, 3시간 걸리는 곳이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초기만 해도 맨해튼 유명 번화가인 콜럼버스서클의 아파트에 머무르려 했다. 미국 내 확진자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뉴욕이 미 50개 주 중에서도 가장 환자가 많은 곳이 되자 마음을 바꿨다. 피셔 씨는 “원격 근무가 가능한 직장에 다니고 있어 햄프턴에 머물러도 큰 문제가 없다. 적어도 올해 10월까지는 계속 여기서 지낼 것 같다”고 밝혔다.
피셔 씨와 비슷한 사람들이 몰리면서 햄프턴 부동산 시장은 그야말로 뜨겁다. 더글러스엘리먼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햄프턴 부동산의 중위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1% 올라 역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부동산 감정인 조너선 밀러 씨는 뉴욕포스트에 “집값이 그냥 오른 게 아니라 정말 많이 올랐다. 일종의 군중 심리도 작용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즉 코로나19 같은 전염병 대유행(팬데믹)이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고, 이때를 대비해 햄프턴 부동산을 대피처로 삼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햄프턴은 코로나19 이전에도 유명 휴양지로 이름이 높았던 터라 최근에는 가뜩이나 비싼 이곳 물가까지 더 오른 상태다. 특히 경제 정상화 이후 각 지역에서 여행객들이 몰려오면서 햄프턴 내 숙박업소가 꽉꽉 차고, 음식점 등 각종 서비스 물가도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 “과열” vs “유동성 랠리 지속” 향후 전망 엇갈려
미국 뉴욕 맨해튼의 고급 주거지인 트리베카 지역에 빌딩 매각을 알리는 간판이 설치돼 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우선 도심 부동산 가격의 회복을 점치는 쪽은 한때 미국의 코로나19 ‘핫스폿’이던 뉴욕주의 확산세가 상당부분 가라앉은 만큼 맨해튼 집값도 원래대로 돌아올 것으로 본다. 뉴욕시가 경제 정상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아파트 거래가 활성화되면 지금까지 숨어있던 잠재 수요가 터지면서 매매와 월세 가격도 올라갈 것이란 의미다.
하지만 플로리다 등 미 남부 지역의 코로나19 확산세가 심상치 않고 각 학교가 9월부터 시작되는 가을학기에도 온라인 수업 위주로 진행할 가능성이 많다는 점을 들어 도심을 떠나 교외로 향하는 현상이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 될 것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 베리 씨 역시 “코로나19 초기에는 도시를 잠시 벗어나려는 수요가 많았지만 이제는 비싸고 혼잡한 도심을 완전히 떠나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코로나19가 곧 끝나지도 않을 것이므로 이참에 영구적인 해결책, 즉 교외 주택 매입을 단행하려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미 전체 부동산시장의 전망을 둘러싼 견해도 마찬가지다. 201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최근 CNBC에서 “미국 주택시장은 주식과 마찬가지로 매우 고평가된 상태”라며 “특히 도심 집값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반면 미셸 메이어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로이터통신에서 “미 대출금리는 역대 최저”라며 저금리와 정부의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에 의한 유동성 랠리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유재동 뉴욕 특파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