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양동이로 물을 퍼붓는 것 같았어요. 20여 년 동안 이런 비는 처음입니다.”
30일 대전과 충청·전북 지역에는 시간당 최고 100㎜ 이상의 비가 쏟아졌다. 말 그대로 ‘물 폭탄’이었다. 아파트 단지가 통째로 물에 잠겨 주민들은 옴짝달싹도 못 했다. 선로에는 토사가 밀려와 열차 운행이 지연됐고, 농경지와 주택 침수도 잇따랐다.
●아파트 잠기고 KTX 운행 지연
타이어와 챙기지 못한 생필품 등이 떠다니는 등 주변은 아수라장이었다. 대전 서구 정림동 5층짜리 코스모스아파트 1층 28가구는 천장까지 물이 차 들어왔다. 미처 빼지 못한 차량 50대는 완전히 물에 잠겼다. 한 주민은 “비가 조금만 더 오면 물이 천장까지 잠길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는 1997년에도 배수관로 등의 문제로 같은 피해를 입었다.
공포에 떨고 있던 주민들은 소방대원의 도움을 받아 창문 너머로 간신히 몸만 빠져나왔다. 소방대원들은 보트를 타고 주민 140여 명을 구조한 뒤 임시 거처가 마련된 오량실내체육관과 정림사회복지관으로 피신했다. 현장을 수색하던 소방대원들은 이 아파트 현관에 쓰러진 50대 남성을 발견하고 병원으로 옮겼지만 숨졌다. 경찰은 이 남성의 사망 추정시간이 6시간 이상 지난 것으로 확인돼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확인할 예정이다.
대전 중구 부사동 한밭종합체육관 1층 차량등록사업소도 물에 잠겼다. 이 때문에 전산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하면서 오전 내내 업무가 마비됐다. 대전 동구 베스티안 우송병원 응급실도 침수됐다. 갑천과 만년교, 원촌교 등은 수위가 급격히 올라갔고 하수까지 역류하면서 한때 홍수경보가 내려지기도 했다.
대전시는 시민들에게 모두 10여 차례의 재난안전 문자메시지를 보내 긴급사태에 대비하도록 당부했다. 휴가 중이던 허태정 대전시장도 휴가를 취소하고 피해 현장을 방문하며 복구 작업을 독려했다. 오후 5시경에는 대전 동구 이사동에서 도로가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대전시내 곳곳에서 도로·하천·주택·공장 등이 물에 잠기면서 449건의 피해가 접수됐다.
●낚시객 고립, 농경지 침수 등 피해 속출
충북 진천군에서도 151.0㎜의 폭우가 내리면서 피해가 잇따랐다. 오전 2시 반경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서 낚시를 하러 왔던 3명이 갑자기 불어난 물에 고립됐다가 구조됐다. 오전 4시 15분경 충북 증평군 증평읍에서 굴다리를 지나던 차량이 침수돼 운전자 1명이 119구조대의 도움으로 간신히 빠져나왔다.
충북 옥천군 군북면 자모소류지가 한때 범람 위기에 놓여 인근 주민 500여 명에게 대피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충북 청주시 소로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건물 2개 층에 빗물이 새면서 수업을 하지 못했다. 학생수련원 진천 본원의 글램핑텐트 19개 동이 물에 잠겼고, 제천 분원은 옹벽 토사 80㎡가 유실됐다. 충청권에 내려진 호우특보는 오후 5시가 돼서야 모두 해제됐다.
충남 천안과 공주시 등에서도 주택과 상가 9채가 침수됐고, 갑자기 불어난 물에 차량 3대가 잠겨 운전자 3명이 구조되기도 했다.
대전=이기진기자 doyoce@donga.com
청주=장기우기자 straw8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