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라인의 그때 그 사람들 재야 통일운동과 햇볕정책 먹히던 그때 북한은 지금의 북한이 아니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조태용 통합당 의원이 “과거에 대북 불법 송금이라는 방법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역이다 하는 이미지가 따라다닌다”고 하자 박 원장은 “반세기 만에 남북대화를 성사시킨 주역이라 이렇게도 좋게 생각한다”고 받아쳤다. 이어진 주 원내대표와의 대화에서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해서 북한은 처음부터 우리가 무슨 박테리아냐, 햇볕 비춰서 다 죽인다는 소리냐 이런 오해가 있었는데, 6·15남북정상회담 이후 이러한 것들이 많이 불식되어서…”라고 장황하게 홍보했다. 현대그룹의 5억 달러로 만든 20년 전 정상회담의 영광을 잊지 못하는 듯했다.
남북대화의 주무장관인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더 노골적으로 과거를 소환했다. 23일 청문회 모두발언에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남북관계 발전과 북핵 문제 해결을 연계시키지 않고 병행함으로써 국제사회를 설득하고 북한의 협조를 이끌어 낸 경험에 주목해야 한다. 병행진전의 출발점은 남북관계의 복원”이라고 강조했다. 장관 지명 직후 “평화로 가는 오작교를 다 만들 수는 없어도 노둣돌 하나는 착실하게 놓겠다”며 자신의 대북 인식이 박 원장보다 더 오래된 것임을 드러냈다. 남과 북을 헤어진 남녀로 치환해 무조건 만나야 한다고 노래했던 1980년대 민중가요 ‘직녀에게’를 읊은 것이다.
허나 어쩌랴, 가버린 시절인 것을. 1980년대 거리에서 남한의 대학생들이 외쳤던 ‘민족’이 순수한 민족주의의 발로였다고 치더라도 노동당 통일전선부를 통해 집요하게 개입했던 북한의 속셈은 오로지 ‘김일성 민족국가’의 영속과 확장이었음을 이제는 모두가 다 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남북대화는 햇볕정책이 먹혀서가 아니라 남한과 샅바를 잡다가 잘못되더라도 내부 동요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권력을 장악했다고 확신한 말년의 김정일이 상대방이었기에 가능했던 ‘예외적 시기’였다.
특히 노무현 정부가 끝난 2008년부터 미중 패권경쟁이 시작되면서 핵보유국 지위를 향해 내달린 북한은 이제 스스로를 미국과 경쟁하는 강대국인 양 행동하고 있다. 핵을 가진 3대 세습 독재자 김정은은 핵이 없는 약소국 남한을 더 이상 민족공조의 파트너로, 경제 지원의 은인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김씨 독재자들이 측근을 대하듯 복종만을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아직 좋았던 과거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북한은 더 이상 그때 그 나라가 아니라는 말이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