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영 사회부 차장
“팸플릿 보니까 윤성이 장래 희망이 경찰관이네. 아빠처럼 훌륭한 경찰관이 되고 싶어?”
시상식에서 아빠 이름이 호명될 때도 의젓한 눈망울을 반짝이던, 경찰관인 엄마가 흐느낄 때마다 담담히 손 잡아주던 큰아들 윤성이는 그제야 어린이로 되돌아왔다. 윤성이는 엉엉 소리 내 울었다. 엄마는 무릎을 꿇고 앉아 아들의 눈가에 손수건을 갖다 댔다.
경남 김해서부경찰서 김도균 경사(38)는 윤성이의 30년 뒤 모습일지 모른다. 김 경사의 아버지는 2006년 도로에 자갈을 흘리는 덤프트럭을 단속하던 중 다른 차량에 치여 순직했다. 윤성이와 동갑인 김 경사의 아들 역시 “아빠처럼 경찰관이 되고 싶다”고 한다. 김 경사는 윤성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그 아이가 훗날 제복을 입게 된다면 아버지의 제복도 함께 입는 거예요. 그게 큰 힘이 될 거예요.”
순직한 아버지의 직업은 자녀에겐 애증의 대상일 수 있다. 2018년 경북 영양경찰서 김선현 경감이 조현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순직했을 때 그의 딸은 경찰 필기시험을 두 달 앞두고 있었다. 대학에서 경찰행정학을 전공하고 시험을 준비해 왔지만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순직은 오랜 꿈을 뒤흔들 만큼 충격이었다. 딸 김성은 순경은 결국 마음을 다잡고 그해 경찰시험에 합격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제가 경찰이 되길 원하실 거 같아 힘을 냈다”고 했다.
경남 창원소방본부 김동수 소방경의 아버지는 1996년 지리산에 조난된 등산객을 구하고 돌아오다 헬기 추락으로 순직한 구조대원이었다. 당시 여섯 살이었던 김 소방경은 유품을 정리하다가 아버지가 헬기 옆에서 제복 차림으로 찍은 사진과 빼곡히 적은 근무일지를 보고 소방관의 꿈을 품게 됐다. 하지만 막상 성인이 되었을 땐 진로를 정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는 2015년 결국 소방관이 돼 화재진압대원으로 일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랑 목욕탕을 못 가본 게 아쉬웠는데 아버지처럼 방화복을 입고 호스를 들고 있으면 그때 빈자리가 채워지는 것 같아요. 불구덩이를 만나도 아버지가 옆에 계신 것 같아 덜 무섭더라고요.”
순직한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는 것은 제복 공무원의 가족으로서 불안과 빈자리를 감당했던 데 이어 아버지가 짊어졌던 위험과 책임까지 승계하겠다는 결심이다.
제복에는 책임감이 묻어 있다고 한다. 제복을 입는 순간 위험에 처한 사람이 눈에 들어오고 몸이 먼저 그쪽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제복의 DNA’가 그런 것일까. 똘똘한 한 채를 대물림하거나 각종 ‘아빠 찬스’가 적지 않은 요즘, 아버지의 못다 이룬 숙명을 이어받는 모습에 숙연해진다.
신광영 사회부 차장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