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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내 개발 가능성 커진 코로나 백신… 국가간 확보전도 치열해져[인사이드&인사이트]

입력 | 2020-07-31 03:00:00

1년만에 가시화된 코로나 백신




전주영 정책사회부 기자

“1950, 60년대 홍역 백신 개발 과정 이후 최고의 황금기다.”

국내 한 감염병 전문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개발을 두고 벌어지는 세계 여러 제약사들의 각축전을 이렇게 설명했다. 홍역 백신은 1963년 미국에서 사용 승인을 받고 세상에 나왔다. ‘최고의 황금기’를 맞았다는 이 전문가의 말처럼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면 ‘대박’을 터뜨릴 것으로 예상되는 수혜주를 따로 모아 소개하는 책들이 출간될 만큼 코로나19 백신 개발은 세계적인 관심사가 됐다. 세계 각국의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속도전으로 치닫는 양상을 보이면서 안전성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역사상 가장 빠른 개발 될 듯

미국 제약회사 모더나와 화이자는 올해 안에 백신 개발을 마무리하고 공급까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최근 발표했다. 공동 개발에 나선 영국의 제약회사 아스트라제네카와 옥스퍼드대는 9월부터 백신 생산에 들어가겠다면서 한발 먼저 치고 나섰다.

어느 회사가 됐든 올해 안에 백신 개발에 성공한다면 인류 역사상 가장 빨리 만들어낸 백신으로 기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12월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확인된 뒤 1년 만에 백신이 나오는 것이다. 1953년 처음 확인된 전염병 수두는 40년 이상 지난 1995년에야 백신이 나왔다. 1947년 처음 확인된 지카바이러스는 아직 백신이 개발되지 않았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는 백신 개발이 중단됐고,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는 아직 개발이 진행 중이다. 사스와 메르스는 선진국에서 유행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기술력과 자본력을 모두 갖춘 선진국들은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의 첫 테이프를 끊을 후보군으로 모더나, 화이자-바이오엔테크(독일), 아스트라제네카-옥스퍼드대, 칸시노바이오로직스(중국)-베이징 생명공학연구소 등이 꼽히고 있다. 모두 3상 임상시험에 들어갔거나 곧 앞두고 있는 곳들이다. 백신 개발은 임상 3단계를 거쳐야 하고 최종적으로는 의약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판매할 수 있다. 단계마다 승인을 거쳐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미국은 식품의약국(FDA), 우리나라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승인한다.

백신 후보물질을 처음으로 사람에게 투여하는 1상은 대개 18∼55세의 건강한 성인 5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다. 백신의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단계여서 임산부, 고령자, 어린이들은 제외된다. 2상 단계에선 투약 대상자를 500명 정도로 늘린다. 3상에선 3만 명까지 늘리고 55세 이상도 포함시킨다. 모더나는 27일(현지 시간)부터 미국 내 89개 도시 3만 명을 대상으로 3상 단계에 들어갔다.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등도 3상 시험을 이달 시작했다. 현재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뛰어든 제약회사는 세계적으로 140곳이 넘는다. 이 중 3상 단계에 들어선 회사는 5곳 정도다.

우리나라는 연내에 백신을 개발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국내 제약사들이 임상시험을 시작한 백신 후보물질은 두 가지인데 모두 1상 단계에 있다.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28일 “계획대로라면 내년 9월에 국산 백신이 나올 것 같다”고 했다. 최 장관은 또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 빌앤드멀린다게이츠 재단 이사장이 최근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SK바이오사이언스가 백신 개발에 성공하면 내년 6월부터 연간 2억 개의 백신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데 대해 “우리에겐 내년 6월 대량 생산할 수 있다는 정보가 없다”고 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빌앤드멀린다게이츠 재단으로부터 백신 개발 연구비를 지원받는다.

○ 확보전도 치열할 듯

백신이 개발된 뒤 판매 물량을 확보하는 것이 세계 각국 정부의 숙제로 떠올랐다. 백신 개발에 점점 다가서고 있다고 알리는 제약사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면서 미국과 영국, 독일 등 주요국들은 백신 확보를 위해 돈을 아끼지 않고 있다. 미국은 화이자-바이오엔테크에 195억 달러(약 23조3220억 원)를 주고 총 6억 회분의 백신을 받기로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22일 화이자-바이오엔테크로부터 올 연말까지 1억 회분을, 이후 5억 회분을 추가로 받기로 했다. 미국 정부는 앞서 아스트라제네카와도 12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통해 3억 회분의 백신을 확보한 바 있다. 어느 회사가 가장 먼저 백신을 개발할지 모르기 때문에 일종의 분산 투자를 한 것이다. 미국은 노바백스와도 16억 달러(약 1조9136억 원)에 1억 회분, 모더나와는 10억 달러(약 1조1960억 원)치 계약을 했다.

영국은 자국 회사 아스트라제네카와 6550만 파운드(약 1018억8656만 원)를 투자해 9000만 회분을 확보했다. 화이자-바이오엔테크로부터 3000만 회분, 프랑스의 바이오업체 발네바로부터도 6000만 회분을 공급받기로 했다. 독일은 큐어백에 3억 유로(약 4214억4600만 원), 프랑스는 사노피에 공장 건설을 지원하는 등 자국 제약사를 지원하고 나섰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가 뭉친 ‘유럽 백신동맹’도 아스트라제네카와 계약하고 4억 회분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돈 많은 나라들이 입도선매(立稻先賣)하듯 백신을 미리 챙기는 데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있지만 물량이 한정된 상황에서 자국민 치료를 우선시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의견도 있다. 신종 인플루엔자가 유행했던 2009년에도 부자 나라들이 백신을 싹쓸이하다시피 해 저소득 국가에 대한 공급량이 많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주도하는 연합체에 참여해 백신 공동구매 추진을 논의하고 있다. WHO의 백신 공동구매 프로젝트 ‘코벡스(COVEX)’엔 75개 나라가 참여하고 있다. 백신 개발 연구비를 공동 지원하고 백신이 개발되면 자국 인구의 20%씩을 구매할 수 있도록 했는데 저소득 국가에 먼저 기회가 주어진다. 또 우리 정부는 최근 아스트라제네카, SK바이오사이언스와 함께 백신 후보물질 물량 확보를 위한 3자 협력의향서를 체결했다. 아스트라제네카-옥스퍼드대가 공동 개발 중인 백신 후보물질을 국내 공장에서 생산해 물량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 제약사 제시 백신값 제각각

제약사들이 제시한 백신 가격은 제각각이다. 모더나는 최근 높게 책정한 가격을 내놨다가 세계적인 비난을 받았다. 2회분에 대해 50∼60달러(약 6만∼7만2000원)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화이자는 2회 접종 예상가로 39달러를 제시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2회 접종분 값을 10달러 이하로 하겠다고 밝혔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최근 본사와 해외 지사 관계자들이 참여한 화상회의에서 커피값 수준의 가격을 책정하기로 내부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화이자 최고경영자 앨버트 부를라는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 등 저소득 국가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백신을 공급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백신이 개발되더라도 누구부터 먼저 맞게 할지, 우선접종 대상 순위를 정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미국은 의료진과 고위험군을 우선 접종 대상으로 정하고 세부적인 기준을 가다듬고 있다. 고위험군엔 고령층, 장기요양시설 거주자, 기저질환 보유자 등이 포함됐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백신 관련 정책을 권고하는 연방자문패널은 우선접종 대상 순위 최종안을 9월에 내놓을 예정이다.

우리 방역당국도 의료진과 고위험군을 우선 접종시키는 쪽으로 기준을 마련 중이다.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당시엔 의료진, 학생, 영유아, 임산부 등을 접종 최우선순위 대상자로 정했다. 하지만 코로나19 백신의 경우 개발 기간이 역대 가장 짧을 것이 확실시돼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영·유아와 임신부는 우선 접종 대상에서 제외할 것으로 보인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30일 “100m 달리기를 하듯이 가장 먼저 들어온(개발된) 백신이 가장 안전하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며 “백신의 효과 이상으로 안전성도 중요하게 봐야 한다”고 했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백신이 나온다 해도 효과의 정도와 지속 기간, 대량 생산 문제가 남아 있다”며 “실제 접종까지는 공급물량 부족으로 시간이 지연될 수밖에 없어 코로나19는 수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영 정책사회부 기자 aimhig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