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8년째 세종시 명암 인구-사업체-출산율 개선됐지만 주말엔 서울로 떠나 텅 빈 도시 자생적 동력 확보해야 한계 극복
A 씨는 “국장, 사무관들보다 과장급이 서울 출장을 가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러니 서울 오가는 길에서 업무를 보고, 위아래 직원들과 메신저로 소통하는 ‘길과장’ ‘카톡과장’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했다.
여권이 쏘아올린 ‘행정수도 이전’ 이슈로 세종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여당이 수도권 과밀과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카드로 청와대와 국회 등을 세종시로 옮기는 행정수도 이전 방안을 밀어붙이면서 이전 범위나 지역 등을 놓고 온갖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2012년 7월 출범한 세종시는 여전히 과도기 단계다.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이전이 마무리에 접어들었지만 주말이면 텅 비는 ‘반쪽 도시’라는 평가가 여전하다. 출범 8년을 맞은 세종시가 ‘공무원의 도시’라는 한계를 넘어 행정수도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 세종시, 균형발전 선봉장 한계 왔나
31일 세종시에 따르면 출범 첫해 12만 명도 되지 않았던 세종시 인구는 올해 6월 말 35만 명 이상으로 불어났다. 수도권을 제외하고 ‘인구 절벽’으로 고민하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와는 딴판이다. 인구가 늘어나니 식당, 커피숍, 마트, 헬스장 같은 사업체도 증가했다. 2012년 6640개였던 사업체는 6년 새 2배 이상(2018년 1만5871개)으로 늘었다.
세종시의 성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 출산율이다. 젊은 인구가 많고 육아휴직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공무원이 많다 보니 지난해 세종시 합계출산율은 1.47명으로 전국 평균(0.92명)을 크게 웃돌았다. 2015년부터 합계출산율 전국 1위다.
세종시의 외형은 커졌지만 당초 목표대로 지역균형발전 효과를 거뒀다고 보긴 힘들다. 주 후반만 되면 공무원들이 서울로 빠져나가 주말이면 텅 빈 도시가 된다. 국책연구원에서 근무하는 장모 씨(32)는 “가족이 서울에 있는 사람은 당연히 서울로 가고, 세종시에 거주하는 사람도 서점이나 호수공원 말고는 즐길거리가 없어 주말엔 서울로 놀러 간다”고 했다. 한식당을 하는 이모 씨(67)는 “주말엔 손님이 없어 아예 문을 닫는 식당이 많다”고 말했다. 장사가 잘 안되니 빈 상가도 많다. 세종시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지난해 4분기(10∼12월) 16.2%로 전국 평균(11.7%)보다 높다.
세종시에 정착했다가 자녀가 크면서 서울로 ‘유턴’하는 공무원도 늘고 있다. 중앙부처 김모 주무관(42)은 “자녀가 중학생이 되면 대학 입시를 고려해 서울로 돌아갈 고민을 하는 동료가 많다”고 전했다. 이러다 보니 세종시 인구는 올 6월 월간 기준 사상 처음으로 감소했다. 수도권 인구 분산과 국토균형발전이라는 세종시 역할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자생적 성장 동력 없인 ‘완성된 도시’ 안 돼
무엇보다도 행정 비효율이 세종시의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청와대와 국회, 기업 대부분이 여전히 서울에 있어 세종시 공무원들은 서울 출장이 일상이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국회와 정부부처가 떨어져 있어 발생하는 출장·시간 비용은 지난해 128억 원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청와대와 국회 이전이 세종시의 ‘행정도시’ 역할을 강화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지남석 대전세종연구원 세종연구실장은 “청와대와 국회가 이전하면 부처와 연계가 원활해져 업무 효율성이나 인구 분산 효과는 높아질 수 있다”고 했다.
청와대와 국회를 옮기는 하드웨어 요소도 중요하지만 문화·관광·교육 인프라가 구축되고 자생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세종시가 미완의 공무원 도시에서 완성된 행정수도로 거듭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김홍배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문화 공간과 교육 인프라 등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청와대와 국회를 이전하더라도 서울에 살면서 세종시를 오가는 사람이 여전히 많을 것”이라고 했다.
1960년 브라질의 행정수도가 된 브라질리아는 내륙 개발과 수도권 과밀 해소를 목표로 추진됐다는 점에서 지역균형발전을 내세운 세종시와 비슷하다. 브라질리아에는 정부부처뿐만 아니라 대통령궁, 국회도 있어 여권이 주장하는 미래 세종시의 모습과 닮았다. 하지만 문화 관광 교육 등의 기반시설이 부족하고 일자리가 관공서가 있는 곳에만 집중되는 등 자생적인 성장 동력이 부족해 퇴근시간 이후엔 텅 비는 도시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종=남건우 기자 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