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 바뀌는 전월세살이] <上> 저무는 전세시대
○ 규제와 초저금리, 임대차 3법이 낳은 ‘전세 품귀’
서울 도심 인기 단지에서 벌어지는 전세 품귀 현상은 앞으로 서울에서 수도권으로 점차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임대차 3법’ 중 계약갱신요구권과 전월세상한제를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이 31일 전격 시행되면서다. 법 시행 전 매물을 거둬들인 집주인들이 매물을 다시 내놓더라도 전셋값을 최대한 올리거나 반전세나 월세로 돌릴 가능성이 커졌다. 한 번 세입자를 받으면 4년간 임대료를 올리지 못하는 데에 따른 보상심리 때문이다. 향후 한국에서 전세제도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서울 마포구 재건축 추진 단지를 보유한 직장인 A 씨는 지난달 말 세입자를 내보낸 뒤 현재 집을 비워두고 있다. 재건축 단지 2년 거주의무 기간을 채우기 위해서다. 실거주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 분양권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전입신고만 하고 가끔 들르기만 하고 실제 거주할 생각이 아니다”라고 했다.
내년부터 양도소득세를 깎아주는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과 수도권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적용 아파트에도 거주의무가 생겨 전세 물량은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보유세 인상도 집주인들의 월세 전환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번 정부 출범 전 2%였던 종합부동산세 최고세율은 현재 3.2%로, 내년부터 6%로 오른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은행 예금 금리가 0%대로 주저앉은 걸 감안할 때 소득이 마땅치 않은 집주인은 전세 보증금을 은행에 넣어두는 것보다는 월세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4년 주거 보장에 일단 안도하는 세입자들
전문가들은 결국 전월세 시장은 월세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앞으로 월세 전환이 굉장히 활발해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겠지만 모든 시장 상황이 월세가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전월세 시장에 일대 변화가 불가피하다. 전세 보증금을 은행 대출금처럼 활용해 투기를 하거나, 주택 가격이 급락할 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깡통전세’ 등의 문제점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 월세 중심으로 재편, 세입자 주거부담 늘 수 있어
문제는 4년 뒤다. 집주인들의 월세 전환이 본격화되면서 주거비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전월세상한제 시행으로 원칙적으로 집주인은 기존 세입자 동의 없이 전세를 반전세나 월세로 돌릴 수 없지만, 요즘처럼 전세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집주인 요구대로 월세를 내고 사는 세입자가 늘고 있다.
세입자가 동의했다면 법에서 정한 전월세 전환율(연 4%)에 따라 보증금을 월세로 돌릴 수 있다. 이때에도 임대료 인상률 5% 룰이 적용된다. 특히 기존 세입자가 나가고 새로운 세입자를 받을 때에는 월세 전환 여부와 임대료 모두 집주인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보증금 1억 원짜리 전셋집을 무보증 월세로 돌리면 매달 33만3333원의 월세를 내야 한다. 서울 성북구에서 전세를 사는 세입자 김모 씨(42)는 “4년 뒤에는 전세가 줄어 꼼짝 없이 월세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은데 월세도 훨씬 올라 있지 않겠느냐. 벌써 걱정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주거비 부담은 15.2%로 38개 회원국 중 가장 낮았지만 앞으로 월세 시대가 도래하면 영국(23.7%), 일본(22.3%), 미국(18.4%)처럼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안성용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 팀장은 “결국 세입자들은 ‘안정’적으로 비싼 주거비용을 내게 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김호경 kimhk@donga.com·조윤경·황재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