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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의 꿀맛 그리고 멜론[스스무의 오 나의 키친]〈78〉

입력 | 2020-08-03 03:00:00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이번 여름 나는 유난히 참외를 즐겨 먹고 있다. 박스를 열자마자 진한 황금색과 달콤한 향이 나는 것을 골라 순서대로 먹다 보면 단것도 있지만 좀 밍밍한 것들은 샐러드 재료로 이용한다. 내가 어렸을 때 먹었던 기억 속의 참외와는 많이 다른데 엄마는 멜론이라 불렀고 추석 차례상에 올릴 때만 잠깐 볼 수 있었던 과일로 기억된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라 우물 안에 넣어 차갑게 두었다가 꺼내 껍질과 속의 하얀 섬유질 부분과 씨도 다 제거한 후 먹었다. 그 부분이 배탈을 나게 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작은 씨들은 괜찮으니 같이 먹어야 더 맛이 있다면서 어릴 때부터 그렇게 먹어 왔다는 것이다. 씨는 적당히 제거하고 섬유질 부분을 남겨 걸쭉히 흐르는 참외의 꿀맛을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된 것 같다.

그 당시 멜론이라 불렀던 참외는 나에게는 오이보다 조금 더 크고 단맛 나는 오이로 기억될 뿐 오랜 세월 속에 거의 잊힌 과일이었다.

멜론은 최근 유전자(DNA) 검사를 통해 인도가 원산지이고 고대 이집트에서도 기르기 시작했다고 밝혀졌다. 호박과 오이와 같은 가족으로 교배에 의해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종으로 발전되어 왔다.

내가 살았던 미국에서 가장 유명했던 멜론은 고소한 캔털루프와 껍질이 부드러운 크렌쇼, 허니듀, 주름이 있는 카사바 등이다. 달콤하고 과즙이 풍부한 머스크멜론 종은 가장 인기종으로 잘 익은 것은 고급 향수의 재료로도 쓰이는 사향 냄새를 풍기는 것이 특징이다.

기원전 5세기경 참외와 토종 멜론은 중동을 거쳐 유럽에 퍼졌다. 과일보다는 야채처럼 취급돼 샐러드, 피클로 주로 쓰이던 것이 프랑스 남부와 유럽의 종자교배로 달고 맛있는 과일로 개발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멜론 조각에 프로슈토를 감싼 간단한 요리는 요즘에도 유럽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약 2000년 전 참외는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과 한국, 일본에 전해졌다.

요즘의 모든 과일은 색이나 모양새, 향보다는 당도에 의한 등급이 그 가치를 좌우할 정도인데 멜론의 경우 12∼18브릭스(brix·100g당 당의 농도) 정도 되어야 상품 가치가 있고 18브릭스 이상은 최상품으로 거래된다. 일본에서는 주로 선물용으로 경매를 통해 거래되는데 올해 홋카이도산 ‘유바리 멜론’의 첫 상품은 2개 120만 원에 거래되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작년 거래액의 40분의 1로 떨어진 저렴한 가격이었다. 참외의 경우 9∼12브릭스 정도이지만 예외적으로 17브릭스에 이르는 종도 있다.

서양의 멜론이 일본에 처음 소개되자 ‘마쿠와 우리’라 불리는 참외는 위기를 맞이했다. 1961년 당도를 높인 종을 개발한 후 서양의 멜론보다 저렴하게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토종 참외는 거의 없어졌다. 요즘에는 한국 수입산과 소규모 농가에서 재배한 추억의 과일로 대부분 사람들은 모르는 과일이 되어 버렸다. 내 아버지는 2000년 한국에 들어와 살고 있던 우리 부부를 방문한 일이 있다. 참외를 오랜만에 먹어 본다고 신기해하시던 기억이 난다. 전통의 맛을 잘 지켜가는 한국 참외는 나의 어린 시절 추억과 돌아가신 엄마, 아버지를 한번씩 생각나게 하는 과일이다.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