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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서관에 날개를]“와, 책 읽는 버스다”… 캠핑장 아이들, 강사 주변으로 모여들다

입력 | 2020-08-03 03:00:00

동아일보-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공동 캠페인
강릉 연곡해변 찾은 ‘책버스’




지난달 31일 강원 강릉시 연곡해변솔향기캠핑장을 찾은 ‘책 읽는 버스’ 앞에서 책 놀이 프로그램 ‘문제가 생겼어요!’가 시작되자 마스크를 쓴 아이들이 엄마, 아빠와 함께 모여 귀를 기울이고 있다. 강릉=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푸른 바다가 펼쳐진 강원 강릉시, 연곡해변솔향기캠핑장. 일주일 내내 비가 내리다 모처럼 해가 반짝 난 지난달 31일 오후, 캠핑장 입구에 자리 잡은 노란색 ‘책 읽는 버스’ 앞에 알록달록한 에어소파가 늘어섰다. 강사가 책 내용을 설명해주며 진행하는 심리 프로그램 시간이 되자 엄마 아빠 손을 잡은 아이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45인승 버스를 개조한 ‘책 읽는 버스’는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운영하고, KB국민은행이 후원하는 이동식 도서관이다.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은 1987년 설립된 후 이동식 도서관으로 농어촌을 찾아가거나 지역 축제 현장 등을 방문해 책 읽기 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책 대여는 물론 구연동화, 심리치료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강사로 나선 최혜경 마음놀이터 심리상담연구소장이 동화책 ‘문제가 생겼어요!’를 읽어주기 시작하자 아이들의 눈이 점차 초롱초롱해졌다. 책에서 아이는 엄마가 없는 사이에 식탁보에 다리미질을 해보다 누렇게 태워버렸다. 어떻게 해야 할까. 최 소장이 “우리 친구들이 실수하면 엄마가 어떻게 할 것 같아요?”라고 묻자 아이들은 “몽둥이로 맞을 것 같아요”라며 깔깔 웃었다. 동화책의 결말은 외출했다 돌아온 엄마가 다리미 자국을 바탕으로 물고기 모양으로 수를 놓아 식탁보를 더 예쁘게 꾸미면서 끝났다. 아이들에게서 “우와”하는 감탄이 나왔다.

책 버스에는 책 1000여 권이 비치돼 있고, 긴 의자에 에어컨도 있어 누구나 시원하고 편안하게 독서를 할 수 있다. 경기 시흥시에서 온 강범준(11), 강민준(7) 형제도 책 버스를 찾았다. 민준 군은 “대통령이 되고 싶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책이 있으면 빌려가야겠다”고 했다. 범준 군은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싶었지만, 책 버스에서 재미있는 행사를 한다고 해서 오게 됐다”고 했다. 대구에서 온 김소연 양(10)은 “물놀이 말고 다른 걸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책을 빌려가서 텐트에서 읽어야겠다”고 했다.

캠핑장에서 책 읽는 색다른 경험을 줄 수 있어 부모들의 참여도 두드러졌다. 어른들을 위해 무료로 가져가도록 준비한 포켓북 ‘명심보감’ ‘도덕경’ ‘논어’는 금방 동났다. 서울에서 두 딸을 데리고 온 유길선 씨(40)는 “캠핑장에 온 지 이틀째인데, 책 버스에서 행사하기만을 기다렸다”며 “아이들이 놀다가 무료해지면 유튜브를 보기 쉬운데 캠핑장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더 늘어났으면 한다”고 했다. 서울에서 아들, 딸을 데리고 캠핑장을 찾은 김남기 씨(39)는 “캠핑 오면 아빠들이 텐트 치랴, 심부름하랴 바쁘다. 책 버스에서 조용히 아이들과 책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좋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비대면으로 책을 빌려갈 수 있도록 전자책 서비스도 확대했다. 변현주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사무처장은 “스마트폰 앱을 깔면 전자책을 일주일 동안 읽을 수 있도록 무료로 대여해 준다”며 “책 버스에서 직접 도서를 빌려가는 이들을 위해 수시로 방역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수연 목사는 “이곳 캠핑장에서 책을 빌리는 수요가 많아 책 버스 운영기간을 16일까지로 일주일 더 늘렸다”며 “한 명이라도 더 책을 읽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강릉=최고야 기자 be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