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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사령관은 왜 스미스부대를 언급했나[국방 이야기/신규진]

입력 | 2020-08-04 03:00:00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오른쪽)과 정경두 국방부 장관(왼쪽)이 지난달 1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제6회 한미동맹포럼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모습. 뉴스1

신규진 정치부 기자

지난달 1일 한미동맹포럼이 열린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 한미 군 수뇌부가 지켜보는 가운데 단상에 오른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은 강연 도중 “스미스 특임대대와 같은 상황을 다시는 겪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스미스 특임대대는 6·25전쟁 당시 가장 먼저 한국에 파병됐지만 오산 죽미령 전투에서 북한군에 참패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이들은) 고강도 훈련을 정기적으로 하지 않았고 무장도 없었다. 이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도 했다.

그의 발언 직전 박한기 합참의장이 “70년 전 오늘이 스미스 특임대대가 참전을 위해 부산에 도착한 날”이라며 축배사를 한 터라 묘한 대조를 이뤘다. 이어 에이브럼스 사령관이 “한반도 안정과 안보의 보증수표는 훈련과 준비 태세”라며 매년 2차례 전구급(戰區級) 연합훈련이 연기, 축소된 데 대해 우려를 표하자 행사장엔 어색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한미가 북한을 달래기 위해 축소한 연합훈련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정상적으로 진행하기 힘들게 되자 사령관이 직접 불만을 표출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일부 군 관계자들은 한미동맹의 공고함을 강조하는 자리에서 그가 괜한 분란거리를 일으킨 게 아니냐며 당혹스러워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안보의 핵심조건으로 연합훈련을 강조한 그의 발언에 대해 군 안팎에선 공감하는 여론이 높다. 군의 존재 가치는 ‘전승(戰勝)’으로 증명되고, 이는 평소 철저한 훈련이 뒷받침돼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철두철미한 훈련이 ‘전승의 핵심 조건’임은 동서고금의 전쟁사에서도 여실히 증명된다.

그러나 우리 군은 몇 년째 ‘전승의 조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연합훈련은 2018년 이후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뒷받침한다”는 이유로 규모가 대폭 축소되거나 연기되기 일쑤였다.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키리졸브(KR), 독수리훈련(FE) 등 북한이 연례행사처럼 비난을 일삼던 대규모 야외기동 및 전시증원연습은 ‘지휘소연습’이란 평이한 이름으로 규모가 확 줄어든 채 진행됐다.

올해는 코로나19라는 전 지구적 재난 상황 때문에 연합훈련은 더 사면초가로 내몰리는 형국이다. 3월에 실시하려던 상반기 훈련은 사실상 취소됐고, 이달 셋째 주로 예정된 하반기 훈련도 미 증원병력 동원에 차질이 생기면서 축소가 불가피하다. 군 당국의 연합훈련 진행 방침에도 여권 일각에선 꽉 막힌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훈련을 또 연기하자는 주장을 제기해 우려를 더하고 있다.

훈련 내용을 둘러싼 한미 간 이견도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정부가 이달 중 하반기 훈련을 진행하기로 결정한 주된 이유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작업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이번 훈련에서 한국군이 주도하는 미래연합사의 완전운용능력(FOC)을 검증해야 전작권 전환이 원만히 추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측은 상반기에 하지 못한 전시 대비태세 훈련에 집중하자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년째 연합훈련의 사실상 부재(不在) 상황에 따른 대비태세 공백을 찾아 메우는 작업이 더 시급하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군의 요청에 따라 이번 훈련에서 FOC 검증은 핵심과제 위주로만 진행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내년 연합훈련 때 올해 미진했던 FOC 검증을 또다시 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향후 FOC 재검증 여부를 두고 한미 간 이견이 불거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군이 연합훈련 본연의 목적을 추구하고 내실을 다지기보단 전작권 전환 검증에만 몰두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많다. 한미연합사 고위직을 지낸 예비역 장성은 “군이 대비태세보다 임기 내 전작권 전환에 매몰된 것”이라고 일갈했다.

실제로 군내에선 대(大)부대 간 실기동 훈련 없는 시뮬레이션 위주의 연합훈련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연합훈련이 축소 지향적이 될수록 안보 불안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남북관계를 중시하는 인사들이 외교안보 라인 전면에 배치되면서 현 정부 임기 말 연합훈련 유예나 연기에 대한 압박은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연합훈련은 남북관계의 걸림돌이 아닌 최소한의 대북 억지 수단이자 한반도 안정의 ‘필요충분조건’이다. 북한이 핵을 고수하는 마당에 연합훈련이 흐지부지되는 것은 대한민국 안보와 한미동맹에도 패착을 불러올 뿐이다. ‘훈련 경시’ 논란이 일 때마다 “내실 있게 훈련을 해왔다”며 말로만 발끈하는 군을 국민들은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신규진 정치부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