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척단이 소아시아 해안에서 바다가 깊고 푸른 좁은 해협의 입구를 발견하고 도시를 세웠다. 그 도시가 지금의 이스탄불 외곽에 있는 칼케돈이다. 이곳은 동서 무역의 요충이었다. 이때 그들이 해협을 건넜더라면 훗날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도시라는 명성을 얻었던 콘스탄티노플의 터를 발견할 뻔했다.
칼케돈은 명성 있는 도시로 성장했다. 이곳에 팔레아스라는 정치가가 등장한다. 그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정치학에 그가 구상한 정치에 대한 비판이 실려 있다.
이런 논쟁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고 인류 역사가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팔레아스는 세금, 사법, 교육 등 내정에 대해서는 세세하게 신경을 썼지만 외정과 군사력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강제적인 평등을 추구하는 권력은 복지를 평등의 중요한 방법으로 사용한다. 이때 걸리는 것이 재원이다. 이때 막대한 군사비가 거슬린다. 군사비를 복지로 돌리자니 평화를 과장하거나 자신이 엄청난 평화주의자인 척하게 된다. 그것도 다행이다. 어떤 이는 부자에게는 악마를 보듯이 대하고, 외부의 적에게는 부처님, 예수님이 된다. 내가 먼저 치지 않으면 상대도 나를 치지 않는다.
필자가 추정하기에 팔레아스도 그러했던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입법자는 인접 국가와 모든 외국에 대한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한 국가의 부는 국내 수요는 물론이고 외부의 위험에도 대처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평화를 가장하는 자가 진짜 전쟁을 부른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