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 바뀌는 전월세살이] <下> ‘규제의 역설’ 피하려면
자칫 세입자를 보호한다는 취지와 정반대로 아직 집을 안 구한 청년층, 목돈을 마련한 기간이 짧은 신혼부부에게 전월세 시장 진입 문턱을 높이는 규제의 역설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서울 도심 등 수요가 높은 지역의 경우 민간에서 전세 매물이 급감하는 가운데 질 좋은 임대주택 공급 확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울 원룸에서 사는 프리랜서 양모 씨(34·여)는 임대차 2법 시행이 달갑지 않다. 수입이 들쭉날쭉해 전세를 선호하는 양 씨는 지난해 11월 보증금 1억 원에 겨우 맞춰 현재 원룸을 구했다. 교통이 불편하고 주거 환경이 좋지 않아 올해 11월 계약 만료 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생각이었지만 전세 매물이 자취를 감췄고, 월세 시세까지 올랐다. 그는 “목돈을 마련하려면 어떻게든 월세만은 피해야 하는데, 지금 예산으로는 현재 거주하는 집보다 더 좋은 집을 구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시는 독일과는 다른 해법을 내놓았다. 현재 뉴욕주는 일방적인 계약 해지를 막고 임대료 인상을 제한하고 있다. 과거엔 임대료 규제가 더 강했다. 집주인에게 난방비, 건물 관리비 등을 임대료에 반영하지 못하도록 하자 집 관리를 소홀히 하거나 하자를 방치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임대주택 공급도 줄었다. 뉴욕시에선 1960년대까지만 해도 연간 주택 공급량이 수만 채 수준이었는데 임대료 규제가 강화되자 1만 채 안팎으로 떨어졌다. 규제가 완화한 1990년대부터 주택 공급이 증가했다.
뉴욕만큼이나 임대료가 비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는 1994년 임대료 상한제가 도입됐다. 지난해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에 따르면 2000년대 중반 임대주택 물량은 규제 전보다 15% 감소했다. 임대료 인상에 제동이 걸린 집주인들이 주택을 처분하거나 주택 이외 용도로 개발한 탓이다. 도심에 살던 저소득층은 외곽으로 밀려났고 그 자리는 고소득층이 채웠다. 연구진은 관련 논문에서 “임대료 규제가 정책 목표와 반대로 샌프란시스코의 젠트리피케이션을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선 양질의 임대주택 부족 현상이 나타날 우려가 더 크다. 독일 베를린의 임대료 동결은 2014년 이후에 지어진 주택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미국 오리건, 캘리포니아주 역시 15년 이상 된 주택에만 임대료를 규제한다. 민간에서 양질의 신규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의욕을 꺾지 않기 위한 취지다.
그동안 공공임대주택은 민간주택보다 질이 떨어진다는 인식과 입지의 한계 등으로 시장에서 외면받기 일쑤였다. 당첨 포기 사례가 속출했던 서울시 ‘역세권 청년주택’이 대표적이다. 당초 민간 자본을 끌어들여 역세권에 시세 95% 이내로 임대주택을 공급할 계획이었지만 민간 업체들이 각종 옵션비를 추가하면서 임대료가 시세보다 비싸진 탓이다.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공공임대주택은 수요자가 선호하는 입지에 양질의 주택으로 공급돼야 한다”며 “새로 지으면 예산과 입지의 한계가 명확한 만큼 원도심의 다세대주택, 상가 등 유휴시설을 양질의 임대주택으로 전환하는 게 보다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김호경 kimhk@donga.com·정순구 기자 / 파리=김윤종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