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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KAIST총장 무혐의… 과학자가 정권 눈치 보게 하는 나라 미래없다

입력 | 2020-08-06 00:00:00


국가연구비를 횡령했다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고발한 신성철 KAIST 총장에 대해 최근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2018년 11월 과기부가 신 총장을 고발할 당시 정치적 이유로 국내 최고 과학 분야 대학의 총장을 몰아내려 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영문 과학전문지 네이처는 당시 신 총장에 대한 고발을 ‘정치적 숙청’이라고 언급했다.

신 총장이 KAIST 이사회에서 총장으로 선출된 것은 문재인 정부 집권 2개월 전이다. 정권이 바뀌자 신 총장에 대한 적폐몰이가 시작됐다. 과기부는 신 총장에 대한 표적 감사를 벌여 그가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으로 재직하던 2012년 미국 로런스버클리 연구소에 불필요한 장비 사용료를 지불하는 등 22억 원을 횡령했다는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과기부는 이에 그치지 않고 KAIST 이사회에 신 총장 직무 정지 안건을 올렸다. 그러나 신 총장이 오히려 저렴하게 장비를 이용한 사실을 아는 과학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KAIST 교수 247명 등 과학계 관계자 727명이 총장 직무정지 거부 성명서에 서명했다. KAIST 총동문회도 “신 총장 직무정지는 KAIST 경쟁력을 추락시킬 것이 자명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과기부의 직무 정지 안건은 이사회 이사들조차 설득하지 못해 보류되는 등 논란을 거듭하더니 결국 이번에 무혐의 처분이 나왔다.

신 총장에게 ‘죄’가 있다면 정부의 퇴진 압박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뿐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됐으나 문재인 정부 들어 임기를 남기고 중도에 사퇴한 과학 분야 기관장이 10여 명에 이른다. 대부분 과기부나 국가과학기술위원회로부터 사임을 종용받고 그만두거나 사임을 거부했다가 표적감사를 받은 뒤에 사퇴한 경우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가 관리하거나 출연하는 기관의 장(長)이 바뀌는 사태는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현상으로 지적돼 왔다. 그래도 최소한 과학계에 대해서만큼은 개입을 삼가는 전통이 지켜져 왔는데 현 정부 들어 그 전통이 깨졌다. 과학은 자율적인 풍토 속에서만 발전할 수 있다. 과학자들마저 정권 눈치를 보게 하는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