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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반지 30만 원 시대[횡설수설/박중현]

입력 | 2020-08-06 03:00:00


1900년 프랭크 바움이 펴낸 ‘오즈의 마법사’는 미국의 1890년대 공황을 은유한 동화다. 당시 심각한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으로 농민들이 고통을 겪자 일부 정치가들이 금본위제 폐지와 은본위제 도입을 주장했다. 금보다 풍부한 은을 기초로 화폐 발행을 늘려 인플레이션을 유도하려던 것이었지만 달러화 가치가 떨어질 것을 경계한 동부 자본가들의 반대로 시행되진 않았다. 오즈(Oz)는 금, 은의 중량을 표시하는 트로이온스(31.1035g)의 단위기호다.

▷4일 뉴욕상품거래소에서 12월 인도분 금이 온스당 2021달러(약 240만4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 처음 2000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올해 들어서만 32% 올랐다. 어제 한국의 금값도 1돈(3.75g)에 29만1555원으로 세공비를 포함한 돌 반지 가격이 30만 원을 넘어섰다. 뱅크오브아메리카증권은 2500∼3000달러까지 금값이 오를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금의 가치는 부식되지 않는 특성과 희소성에서 나온다. 세계금위원회(WGC)에 따르면 인류가 지금까지 채굴한 금의 총량은 19만7576t이다. 한데 모으면 천장 높이 2.5m인 99㎡ 아파트 41채 안에 모두 넣을 수 있는 정도의 양이다. 이 중 47%가 장신구 등에 쓰이고 있으며 21.6%는 민간 투자용, 17.2%가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 보유량이다. 매년 2500∼3000t의 금이 새롭게 채굴된다.

▷미국 근현대사는 금과 함께했다. 미국 서부 연안은 1849년 캘리포니아 금광에 몰려든 ‘포티나이너스(forty-niners)’가 개척했다. 1, 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패전국에서 받은 금 배상금, 무기 판매 대가로 챙긴 금을 기초로 미국은 금본위제를 1971년까지 유지했고 달러화는 세계 기축통화로 자리 잡았다. 지금도 미국 정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8133.5t의 금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행 역시 104.4t의 금을 12.5kg짜리 금괴 형태로 영국 중앙은행 지하 금고에 맡겨두고 있다. 세계 중앙은행 중 보유량 35위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 정부와 연방준비제도(Fed)를 비롯해 세계 각국은 막대한 돈을 풀었다. 대공황의 교훈을 토대로 선제적으로 대응해 디플레이션은 피했지만 예기치 않은 결과가 나타났다. 너무 많이 푼 탓에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고 ‘절대 안전자산’인 금으로 자산가들의 돈이 쏠린 것이다. 좌충우돌하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불안감이 세계 금값을 더 끌어올린다는 분석도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금은 인간의 불안을 반영하는 바로미터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