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전문병원 60대 조울증 환자, ‘퇴원 요구’ 앙심 품고 원장 살해 규모 작아 보안인력 따로 없어… 의협 “의료인 안전대책 마련” 촉구
부산의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원에서 환자가 흉기를 휘둘러 담당 의사를 살해하는 일이 또다시 발생했다. 2018년 서울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임세원 교수가 진료 도중 환자에게 피살된 사건 이후 의료진 폭행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임세원법’이 시행됐지만 유사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5일 부산 북부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25분경 북구의 한 신경정신과 전문의원에 입원해 있던 A 씨(60)가 이 병원 김모 원장(60)의 진료실에 들어가 김 원장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김 원장은 팔과 옆구리 등을 크게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이 병원은 20병상 규모의 소규모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으로 김 원장이 혼자 진료를 해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몸에 인화 물질을 뿌리고 10층 높이 창문에 매달려 있던 A 씨를 체포했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갈 곳이 없는데 병원 측에서 계속 퇴원을 요구해 화가 나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A 씨는 범행 전 병원에서 나와 흉기와 휘발유를 구입했으며 흉기를 옷 속에 숨긴 채 김 원장의 진료실에 들어가는 등 범행을 미리 준비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병원 관계자 등에 따르면 김 원장은 20여 년간 종합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재직하다가 지난해 3월 개업했다. 김 원장은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정신질환도 다른 병처럼 약물로 충분히 고쳐 나갈 수 있는데 사회의 편견이 여전해 안타깝다. 환자들을 위해 마지막까지 봉사하고 싶다”며 개원 이유를 설명했다고 한다.
임세원 교수 사건을 계기로 지난해 4월 의료인을 폭행한 가해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을 골자로 한 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된 뒤에도 의료진 피해 사례는 지속되고 있다. 법에 따르면 100병상 이상의 병원급 의료기관은 경찰청과 연결된 비상벨을 설치하고 1명 이상의 보안인력을 둬야 하지만 소규모인 김 원장의 병원은 이 기준에 해당하지 않아 보안인력이 없었다. 올 6월에는 전북 전주의 한 종합병원에서 환자가 정신의학과 진료실에 난입해 의사를 폭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10월 서울과 12월 충남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이날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아직도 의료인의 안전이 무방비 상태로 위협받고 있다”며 “환자의 생명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의료인의 안전한 진료 환경을 위한 대책을 우선 마련해야 한다”고 정부에 촉구했다.
부산=강성명 smkang@donga.com / 김소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