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도바 선적 화물선이 싣고온 뒤… 항구이용료 미납해 화물 포기 ‘하역’ 당국 누구도 책임 맡으려 안해… 사망 최소 157명-피해액 17조원
폭발로 형체 사라진 베이루트항 올해 6월 9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항의 모습(왼쪽 사진)과 대형 폭발 사고 다음 날인 이달 5일 같은 지역을 찍은 위성사진. 주요 건물이 형체도 없이 사라져 완전히 폐허로 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베이루트=AP 뉴시스
이번 사건은 정부의 위험물질 관리 소홀에서 비롯된 인재(人災)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가뜩이나 경제난이 심각한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부실 대처로 레바논 정부가 질타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으로 레바논이 더욱 깊은 혼란에 빠져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날 주요 외신들은 고위험 폭발성 물질인 질산암모늄이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다는 경고를 수차례 받았으나 레바논 당국이 이를 묵살해 왔다고 보도했다.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레바논 정부는 위험물질이 시내 중심가에서 가까운 항구에 적재돼 있다는 사실을 6년 전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 CNN은 이후 베이루트 세관장이 법원에 최소 6차례 이상 창고에 쌓여 있는 질산암모늄의 위험성을 알리고 이를 처리해 줄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으나 법원에서 묵살했다고 전했다. 세관 측은 이를 수출하거나 군용으로 쓰는 방안 등을 제시했지만 역시 법원이 기각했다.
최근까지도 경고음이 울렸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로이터는 6개월 전 해당 창고의 질산암모늄에 대한 검사가 이뤄졌는데, 이 물질을 옮기지 않고 그대로 둔다면 베이루트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결과적으로 수년간이나 별다른 안전장치도 없이 군용 폭발물로도 쓰일 수 있는 물질이 위험천만하게 방치돼 있었던 셈이다. 현지 언론 LBCI는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사고 현장 인근에서 노동자들이 용접 작업을 하던 중 불꽃이 튀고 옮겨붙으면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폭발이 일어나기 몇 시간 전에 창고 문을 수리하고 있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CNN 등은 충격에 빠져 있던 레바논 시민들도 위험물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정부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참사로 7일로 예정됐던 유엔 특별재판소의 라피크 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 암살 사건에 대한 판결은 18일로 연기됐다. 암살 혐의를 받는 4명은 레바논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 대원들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6일 외국 정상 중 가장 먼저 레바논을 방문했다. 그는 지원 의사를 밝히면서도 “개혁을 하지 않으면 레바논은 계속 침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레바논은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으며 양국은 여전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카이로=임현석 특파원 l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