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NK News 팟캐스트 호스트
26년 전 멜버른에 변변한 한식당이 없었던 것처럼 내가 1996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한국은 피자의 불모지였다. 당시 한국에서 파는 피자는 나의 구미에는 전혀 맞지 않았지만 한국인 입맛에는 맞는 ‘한국식 피자’였다.
그동안 많은 피자 체인점이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피자는 아니다. 문제는 대략 5가지다. 베이스, 소스, 치즈, 토핑, 오븐이다.
셋째, 치즈는 무척 예민한 문제다. 지난 30년간 한국 시장에 치즈 제품들이 몰려왔다. 치즈에는 우유, 소금, 발효를 위한 유산균만 들어가고 가공이 아닌 자연 과정으로 완성된다. 저렴한 피자는 풍미가 거의 없고 대부분 자연스러운 발효 과정이 생략된 재료를 쓴다.
넷째, 토핑이다. 외국인 친구들끼리 하는 일종의 내기 게임이 있다. 가장 희한한 토핑을 본 사람이 내기에 이기는 식이다. 이 게임에서 ‘초코칩 쿠키’를 토핑으로 본 동료가 이겼다. 한국 피자에는 옥수수가 일반적이다. 옥수수 토핑은 한국 외에는 못 봤다. 얼마 전에는 한 레스토랑 사진에서 옥수수대까지 통째로 올린 피자도 봤다. 나라면 이런 피자를 주문하는 위험을 무릅쓰지는 않을 테다. 설탕에 절인 체리 토핑을 본 기억도 생생하다.
모든 시장마다 특색이 있다. 미국, 호주, 네덜란드 피자는 이탈리아식 피자와 다르다. 서양에는 파인애플이 피자 토핑에 들어가도 되느냐는 논쟁이 열정적이고 그 논쟁의 역사가 길다. 아마 이탈리아의 ‘피자 근본주의자’들에게 파인애플이 괜찮다면 체리나 고구마, 옥수수도 피자 위에 놓아버리는 게 별일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게다가 토핑이라면 당연히 넉넉하게 얹어져 있어야 한다. 몇 년 전 유명한 서울 인사동 이탈리아 식당에서 친구랑 페퍼로니 피자를 주문했다. 페퍼로니란 미국식 살라미이고 보통 아낌없이 피자 위에 얹어놓는다. 피자가 드디어 나왔을 때 페퍼로니가 보이지 않아 웨이터에게 물었다. “페퍼로니는 어디에 있죠?” 웨이터는 피자 위 성냥개비 같은 것을 가리켰다. 웨이터에게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다시는 그 식당을 찾지 않았다.
마지막 문제는 오븐이다. 한국은 오븐을 쓰는 전통이 거의 없다. 한국 음식 요리법은 주로 찌거나 끓이거나 튀기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에 화덕 오븐을 사용하는 식당이 많이 생겼다.
우리는 그 피자집을 또 방문할 것 같다. 놀라운 점은 문을 연 지 2년이 넘었는데 우리가 그 집을 안 지 몇 주밖에 안됐다는 것이다. 한국 피자에 대한 불신에서 빚어진 불상사라고나 할까. 한국에선 뭐든 빨리 변한다는 것을 잠깐 잊었었나 보다.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NK News 팟캐스트 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