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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읽는 법]경계의 우화

입력 | 2020-08-08 03:00:00

◇동물농장/조지 오웰 지음/160쪽·7000원·민음사




최초의 디지털 컴퓨터 에니악이 미국에서 개발되기 한 해 전에 발표된 작품이다. 그로부터 75년이 흘렀다. 30t 무게의 에니악은 세상 모든 정보를 싣고 전하는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으로 진화했다. 눈과 귀에 거슬리는 소식은 채널이나 볼륨 조절하듯 간단히 솎아낼 수 있는 기기. 어떤 대상이든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재단해 접하는 데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서로를 외면한 시선을 스마트폰에 고정해 놓고 모인 듯 격리돼 살아간다.

상이한 의견을 지닌 주체 간의 논쟁과 타협을 통해 느릿느릿 형성되는 변화는 그래서 이제 바라기 어렵다. 듣기 싫고 보기 싫은 걸 손쉽게 차단할 수 있는데 인내와 관용의 에너지를 기약 없이 소비할 이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아군이 아니면 적. 경계인은 환영받지 못한다.

협상의 점이지대가 사라진 사회에서 유효하게 작동하는 것은 수적 우위에 근거를 둔 완력뿐이다. 겨룸의 승자가 전부를 얻는다. 완력으로 인간들을 몰아낸 동물농장에서 “결의안을 제출하는” 우월권을 독점한 돼지들은 “투표하는 법까지만 아는 다른 동물들” 앞에 내걸었던 계명들을 하나씩 지워나간다. “검정도 하양으로 보이게 만드는 언변”을 지닌 돼지 스퀼러가 그 작업의 선봉을 맡는다.

“돼지들이 우유와 사과를 독차지하는 건 그걸 좋아해서가 아니에요.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돼지들은 머리 쓰는 노동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농장의 경영과 조직은 전적으로 우리 돼지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밤낮으로 여러분 모두의 복지를 보살핍니다. 그러므로 돼지들이 우유와 사과를 독차지하는 건 바로 ‘여러분의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지도자 돼지’로 등극한 나폴레옹은 우선 동물 전체 회의부터 폐지한다. 돼지들로만 이뤄진 비공개 특별위원회가 모든 사안을 결정해 통보하겠다고 선포한 뒤 이에 항의한 소수의 돼지들은 개를 풀어 목을 물어뜯게 한다. 축출된 전임 권력자 스노볼에 대한 비난에 반박한 수말 복서에게도 개들을 덤비게 했다가 힘에서 밀리자 일단 모른 척하고 얼마 뒤 도살장으로 보낸다.

“농장의 삶은 고됐다. 지난해처럼 이번 겨울도 혹독했고 식량은 더 부족했다. 스퀼러는 ‘당분간 분배량을 조절해야 하지만 인간 농장주 존스가 있던 시절에 비하면 사정이 크게 나아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물들은 지금의 삶이 고단하다는 걸 알면서도 ‘존스 시절에는 훨씬 더 사정이 나빴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그렇게 믿었다.”

“나폴레옹은 언제나 옳다”에 앞서 농장의 동물들을 결집시킨 구호는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였다. 다른 동물들을 내려다보며 채찍을 휘두르기 위해 두 발로 서서 움직이기 시작한 돼지들은 그 구호를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더 좋다”로 바꿔버린다. 75년 전에 쓰인 문장 거의 전부가, 눈앞의 현실에 맞춤옷처럼 착착 감긴다.

“무엇이 돼지이고 무엇이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