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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탓[횡설수설/이진구]

입력 | 2020-08-08 03:00:00


최초로 아내 탓을 한 남편은 아담이 아닐까. 이브가 나무열매를 줘서 먹었다고 둘러댔는데, 요즘 보통 남자들 세계에서 그렇게 여자 핑계를 대면 찌질한 인간으로 취급받는다. 그런데 유독 정치판이나 고위층에서는 그런 장면이 여전히 자주 연출된다.

▷청와대는 김조원 민정수석이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집을 매물로 내놓은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부동산 거래를 할 때 얼마에 팔아 달라는 걸 남자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팔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높게 부른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부인 핑계로 피해간 것이다. 다주택자인 김 수석은 서울 잠실 갤러리아팰리스 47평형(전용면적 123m²)을 시세보다 2억∼4억 원가량 비싼 22억 원에 내놨다가 논란이 일자 거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해명이 사실이라면 수십억짜리 집을 얼마에 팔지 상의도 안 하는 부부인 셈이다. 김 수석은 어제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해 사퇴한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부동산 투기 의혹이 일자 “건물 매입은 아내가 한 일”이라고 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사모펀드 투자가 문제되자 재산관리는 아내가 전담했다고 했다. 2010년 한 경제부처 장관 후보자는 뉴타운 예정지의 쪽방촌 지분을 산 사실이 드러나 투기 의혹이 일자 “아내가 노후대비용으로 한 것 같다”고 말했고 결국 낙마했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최근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이 확정된 안종범 전 대통령경제수석은 재직 중 업자에게 아내에게 줄 명품 가방을 요구했는데, 재판에서는 아내에게 책임을 돌렸다. 안 전 수석에게 돈과 선물을 준 업자 부부는 특검에서 “청와대 수석치고는 구차하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방송인 김구라의 전 부인은 빚이 17억 원에 달했다고 한다. 남편 모르게 보증을 섰다가 빚을 떠안게 된 것. 김구라는 아내와 함께 심리치료도 받고 겹치기 출연을 하며 빚을 갚아갔는데 그 과정에서 전 재산 가압류 통보를 받고, 공황장애 진단을 받아 입원하기도 했다. 결국 2015년 이혼했지만, 김구라는 이후에도 무려 48개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받은 출연료로 전 부인의 빚을 다 갚아줬다고 한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책임을 지는 사람과 어떻게든 면피하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이 있다. 후자의 가장 꼴불견이 ‘아내 탓’이다. 금품 수수 의혹을 받자 자신은 빠져나가고 아내가 징역을 산 국회의원 같은 ‘찌질이’를 필부(匹夫)들 사이에선 오히려 찾기 힘들다. 공자는 ‘군자는 잘못을 나에게서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찾는다’고 했다. 고위직에, 군자는 바라지도 않고 미성숙자가 너무 많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