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에 쓰는 ‘인생 기획서’ 乙 벗어나 자아 성찰하는 고통 속 스스로 질문하며 주도권 찾는 삶 甲이 되어 내 안의 에너지 길어 올리자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요즘도 심심치 않게 갑질 기사가 나듯이 우리는 갑을 관계 속에 살아가며 많은 이가 ‘을’로 산다. ‘갑’이어도 돌아서면 을이 되기도 하고 업종과 관계없이 늘 을인 사람도 많다. 사회생활이란, 생업이란 그런 측면이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에겐 을의 자세가 몸에 배어 있는 것 같다. 갑을에서 벗어난 온전한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도 을의 자세를 갖추는 거다. 연말까지 기다려본 후 인사 결과에 ‘따라’ 진로를 정하겠다는 후배도 그래 보였다.
다들 그렇게 살지 않느냐, 당신에겐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날 나는 후배에게 이렇게 말해줬다. 회사의 인사 결과와 무관하게 우선 네 방향을 정하고 전략을 짜라고. 우리는 늘 회사를 위해 기획서를 쓰고 클라이언트를 위해 전략을 짜는데 이제는 자신을 위한 기획서를 써보라고. 나는 무엇을 잘하고 어떤 강점이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그 일을 하고 싶은지, 앞으로의 시간을 어디서 누구와 무얼 하며 보낼 것인지를 적어 보라 일렀다. 물론 나이 오십이 다 되어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고통스럽다. 이십 몇 년을 일했어도 남보다 잘할 수 있는 일이란 별로 있는 것 같지 않고 회사 명함 없이 이름 석 자로 세상에 나갔을 때 할 수 있는 게 과연 있을지, 통하기는 할지 막막하고 불안하다.
그걸 어떻게 알아낼까? 자신에게 물어보는 거다. 우리는 질문도 잘 안 하지만 자신에게 묻는 일은 더더욱 없는 것 같다. 그저 세상의 기준에 맞추려고만 한다. 그러면 비교하게 되고 누군가 이미 만들어 놓은 답안지 중에서 골라야 한다. 주도권을 내주게 되고 자기 인생에서마저 을이 되고 만다.
나는 일을 할 때 주도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주도권이 있으면 일이 훨씬 재미있고 신난다. 이것저것 자꾸 생각해 보고 시도하게 된다. 내 안의 에너지를 다 끌어내게 된다. 그러면서도 별로 힘들거나 지치지 않는다. 등산을 해보면 알 수 있다. 같은 산을 올라도 뒤에서 갈 때와 앞장서서 갈 때는 힘든 정도가 다르다. 뒤에서 따라가면 앞에서 이끄는 사람의 페이스에 맞춰야 한다. 더 빨리 걷기도 늦게 걷기도 어렵다. 하지만 앞에 서서 걸으면 얼마나 빠른 속도로 갈지, 어디서 쉴지 내가 정할 수 있고 페이스를 조절할 수 있다. 주도권의 차이다.
물론 세상을 항상 갑으로 살기는 어렵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에서만큼은 언제나 갑일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으레 자신을 을의 자리에 놓는다. 이제 을은 그만두고 갑으로 살자. 갑이란 주도권을 쥔 사람이다. ‘무엇을 좋아하세요?’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을 받는 사람이다. 을에겐 묻지 않는다.
을은 그저 정해진 대로 따르는 사람들이니까. 그런 질문은 갑에게나 하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자.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으냐고. 그러면 주도권을 다시 쥘 수 있다. 자기 인생의 갑이 되는 순간이다.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