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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플래시100]‘고맙다’ 대신 ‘아리가토’ 써라? 일본어가 국어라니…

입력 | 2020-08-08 11:40:00

1921년 12월 4일






플래시백

1910년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하고 초대 조선총독에 오른 데라우치는 이듬해 8월 조선교육령을 공포해 조선인 학교의 교육연한을 단축하고, 우리말의 모국어 지위를 박탈했습니다. 이에 따라 한반도에서 ‘국어’는 일본어가 됐고, 우리말과 우리글은 ‘조선어·한문’이라는 이름으로 기타 과목 취급을 받았습니다.

조선어연구회는 훈민정음 반포 8회갑(480년)인 1926년 11월 4일(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정했다. ‘가갸거겨…’로 한글을 배우는 데 착안해 명명한 가갸날은 이름과 날짜는 바뀌었지만 최초의 한글날인 셈이다. 조선어연구회와 신민사가 각계 인사를 초청해 경성 식도원에서 연 가갸날 기념 축하잔치 모습.



1919년 3·1운동 후 문화정치를 표방한 사이토 총독은 성난 민심을 달래려는 유화책의 하나로 조선인 학교에 한해 조선어를 필수과목으로 인정하는 등 조선교육령을 다소 수정했지만, 본질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수업시간은 일본어의 절반가량에 그쳤고, 조선어를 가르칠 때도 일본어를 쓰게 해 조선어 과목은 마치 외국어 시간 같았습니다.

위기의식을 느낀 임경재 최두선 이규방 권덕규 장지영 등 국어학자들은 1921년 12월 3일 ‘조선어연구회’를 발족합니다. 1908년 주시경 김정진 등이 창립한 국어연구학회의 후신인 이 단체는 1931년 조선어학회, 광복 후 1949년에는 다시 한글학회로 바뀌어 오늘에 이릅니다.

창간 초기 연속 사설 ‘조선인의 교육용어를 일본어로 강제함을 폐지하라’를 통해 총독부의 교육정책을 비판했던 동아일보는 조선어연구회 설립 바로 다음날인 12월 4일자 1면 사설 ‘조선어연구회, 그 의의가 중대’를 게재해 조선민중의 관심과 기대를 당부했습니다. 총독부의 조선어 말살정책이 계속되면 한글은 물론 민족정신까지 잃을 수 있다고 판단해 조선어연구회에 적극적인 지지를 호소한 겁니다.

조선어연구회는 한글 보급을 위해 여러 차례 무료강습회를 열었다. 사진은 1927년 6월 13~18일 경성 수송동 중동학교에서 열린 여성 한글강습회. 국어학자 권덕규와 정열모가 음운과 문법을 가르쳤는데 첫날부터 70여 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사설은 우선 국가와 민족의 행복은 정치가나 군사전략가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학자, 농부, 실업가 등의 꾸밈없고 수수한 노력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라며 휘문고등보통학교 교실 한 구석에서 조용히 출범한 조선어연구회의 장도를 축원합니다. 이어 조선의 학술, 시가문학, 종교, 예술, 정치, 도덕과 경제까지 모든 분야가 발달하려면 조선의 문법과 언어의 발전이 기초가 돼야 한다면서 조선어연구회는 비록 소박하게 출발했지만 조선 문화의 기초를 다지는 위대한 사업을 하고 있다고 격려했습니다.

조선어연구회는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말, 우리글을 지켜내기 위한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지 8회갑(480년)이 되던 1926년에는 11월 4일(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정해 영원히 기념하기로 합니다. 물론 당시에도 ‘한글’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널리 쓰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한글을 처음 배울 때 친숙해진 ‘가갸거겨…’에서 따온 이름이었죠. 이 가갸날이라는 명칭은 2년 뒤인 1928년부터는 ‘한글날’로 바뀝니다.

동아일보는 조선어연구회의 한글보급에 부응해 1928년부터 문맹퇴치운동에 적극 나섰다. 3월 27일자 지면에 실린 ‘우리글 원본’. ‘오늘부터라도 알기 좋고, 배우기 쉽고, 쓰기 편한 가갸거겨를 시작합시다’라는 권유가 붙어 있다.



가갸날, 또는 한글날의 구체적 날짜도 몇 차례 바뀌었습니다. 처음엔 세종 28년(1446년) 음력 9월 실록에 기록된 ‘이 달에 훈민정음이 완성되다’를 근거로 당시 음력 9월 말일인 29일로 정했습니다. 1931년에는 기념일을 양력으로 바꿔 날짜를 고정하자는 뜻에서 율리우스력으로 환산해 10월 29일을 한글날로 정했는데, 1934년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하는 게 옳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 10월 28일로 바뀌었습니다. 이후 1940년 발견된 훈민정음 원본 서문의 ‘9월 상한(上澣·상순)에 썼다’는 기록에 따라 9월 상순의 마지막 날인 9월 10일을 반포일로 보고 1945년부터 이를 양력으로 환산한 10월 9일로 한글날을 정한 겁니다.

조선어연구회는 한글 보급을 위해 교사와 일반 민중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 강습회도 엽니다. 동아일보는 한글강습회를 상세히 보도하는 한편 창사 8주년을 앞둔 1928년 3월부터 대대적인 문맹퇴치운동을 벌입니다. 이 문맹퇴치운동과 1931년 시작한 ‘브나로드 운동’은 다음에 더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

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


원문
朝鮮語硏究會(조선어연구회)

그 意義(의의)가 重大(중대)


國家(국가) 民族(민족)의 幸福(행복)이 宏壯(굉장)한 光景(광경)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잇스며, 質素(질소)한 努力(노력)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있스니

千兵萬馬(천병만마)가 驅馳(구치)하는 戰場(전장)에서 生命(생명)을 犧牲(희생)하야 自國(자국)의 權利(권리)를 擁護(옹호)하는 것이라든지, 或(혹)은 天下(천하)의 英雄傑士(영웅걸사)가 堂中(당중)에 會合(회합)하야 世界人(세계인)의 運命(운명)을 論定(논정)할 새 奇謀秘略(기모비략)을 深藏(심장)하고 華麗(화려)한 舞臺(무대)에 卓立(탁립)하야 或揚(혹양) 或抑(혹억) 或進(혹진) 或退(혹퇴) 或與(혹여) 或取(혹취)의 自由自在(자유자재)한 辯論(변론)으로써, 縱橫無礙(종횡무애)한 手腕(수완)으로써 自國(자국)의 地位(지위)를 向上(향상)하는 것이라든지는 모다 宏壯(굉장)한 光景(광경)에서 一國(일국)의 幸福(행복)을 圖謀(도모)하는 것이라. 따라서 萬人(만인)의 稱讚(칭찬)을 밧기 容易(용이)하고, 또 그 功效(공효)가 顯著(현저)한지라 그 이 方面(방면)에 志願(지원)하는 者(자)가 許多(허다)하되,

敎場(교장)에서 粉筆(분필)로써 兒童(아동)의 頭腦(두뇌)를 開拓(개척)하는 것이라든지, 農場(농장)에서 鍬鋤(초서)로써 自然(자연)의 利源(이원)을 開發(개발)하는 것이라든지, 或(혹)은 試驗室(시험실)에서 眞理(진리)를 發見(발견)하고 硏究室(연구실)에서 事理(사리)를 窮究(궁구)하는 것이라든지는 모다 質素(질소)한 努力(노력)으로써 一(일) 民族(민족)의 幸福(행복)을 이루우는 것이라. 사람이 大槪(대개)는 그 勞苦(노고)를 아지 못하며, 따라 그 功效(공효)를 認定(인정)하지 아니하고 도라보지 아니하나니 이럼으로 그 이 方面(방면)에 志願(지원)하는 者(자)는 만치 못하도다.

世界(세계)의 歷史(역사)를 繙見(번견)하건대 우리는 時代(시대)마다, 國家(국가)마다에 所謂(소위) 偉人(위인) 傑士(걸사)라는 政治家(정치가)와 軍略家(군략가)를 發見(발견)하되 農業家(농업가)나 敎育家(교육가)나 或(혹)은 學術硏究者(학술연구자)는 到底(도저)히 發見(발견)하지 못하는 도다. 近世(근세)에 至(지)하야 多少(다소)의 此(차) 方面(방면)에 對(대)한 認定(인정)이 잇스나, 그러나 大體(대체)로 論之(논지)하면 아즉 『양념거리』에 不過(불과)하는 도다. 이는 人生(인생) 虛榮(허영)의 一(일) 弊端(폐단)이라 엇지 慨歎(개탄)할 바ㅣ 아니리오.
吾人(오인)은 社會(사회)의 實狀(실상)을 알면 알사록, 進化(진화)의 原則(원칙)에 通(통)하면 通(통)할사록 이 浮虛(부허)한 人性(인성)에 對(대)하야 厭症(염증)이 生(생)하고 反感(반감)이 發(발)하나니 壯宏(장굉)한 光景(광경)이 質素(질소)한 努力(노력)에 依(의)한 實力(실력)과 發達(발달)을 伴(반)하지 아니하고서 그 무슨 可用(가용)이 잇스며, 質素(질소)한 努力(노력)에 依(의)한 實地(실지)의 實(실) 幸福(행복)이 無(무)하고서 그 무슨 價値(가치)가 잇스리오.

政治家(정치가)나 軍人(군인)이 必要(필요)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나, 그러나 吾人(오인)은 今日(금일)에 在(재)하야 그 以上(이상)으로 學者(학자)와 農夫(농부)와 實業家(실업가)를 尊敬(존경)하여야 할 것이라. 尊敬(존경)할 뿐 아니라 힘써 그것이 되여야 할 것이로다.

이 眞理(진리)를 우리는 朝鮮語硏究會(조선어연구회)에 對(대)하야 適用(적용)할 수 잇스니, 첫재 그 發起人(발기인)을 보건대 十名(십명)에 未及(미급)이라. 普通(보통) 會(회) 發起人(발기인) 數(수) 三十(삼십) 名(명)에 比(비)하야 매우 質素(질소)한 줄은 可(가)히 알겟스며, 그 新聞(신문)에 報道(보도)된 바를 보건대 十餘(십여) 行(행)에 不過(불과)하는 三面(삼면)의 一隅(일우)를 占領(점령)한지라 政治外交(정치외교) 記事(기사)의 數百(수백) 行(행), 數三(수삼) 段(단)을 占領(점령)함에 比(비)하야 매우 質素(질소)한 것을 可(가)히 깨닷겟스며, 그 創立(창립)되는 場所(장소)를 보건대 學校(학교) 一(일) 敎室(교실) 內(내)에서 閑寂(한적)한 中(중)에 數三(수삼) 學者(학자)의 手(수)에 依(의)하야 呱呱(고고)의 聲(성)을 擧(거)하는 지라, 政治的(정치적) 會合(회합)의 或(혹) 結黨式(결당식)의 宏壯(굉장)함에 比(비)하야 그 얼마나 質素(질소)한고.

吾人(오인)은 此(차) 質素(질소)가 곳 世人(세인)의 不注意(부주의)와 無關心(무관심)을 表示(표시)함인 것을 覺(각)할 때에 一種(일종)의 怒念(노염)이 發(발)하며, 一種(일종)의 悲感(비감)이 動(동)하는 도다. 虛榮(허영)에 生(생)하고 實地(실지)를 閑却(한각)하는 民族(민족)이 그 엇지 繁榮(번영)을 可(가)히 望(망)하며, 學術(학술)을 閑却(한각)하고 空論(공론)에 發憤(발분)하는 民族(민족)이 그 엇지 勝利(승리)를 可(가)히 期(기)하리오. 吾人(오인)은 朝鮮語硏究會(조선어연구회)의 誕生(탄생)을 歡迎(환영)하는 同時(동시)에 그 世人(세인)의 無自覺(무자각) 無關心(무관심)을 慨歎(개탄)하노라.

그러나 이제 吾人(오인)은 吾人(오인)의 觀察(관찰)하는 바 朝鮮語硏究會(조선어연구회)의 意義(의의)를 論(논)하야써 그 重大(중대)한 所以(소이)를 明白(명백)히 하고자 하노니 朝鮮(조선)의 文化運動(문화운동)이 盛大(성대)한가. 人人(인인)이 開口(개구)하면 輒言(첩언)하야 曰(왈) 『文化運動(문화운동)』이라 하는 줄을 吾人(오인)은 知(지)하노라. 그러나 『朝鮮(조선)의 文化(문화)』는 그 무엇으로써 基礎(기초)를 作(작)하며, 그 무엇으로써 前提要件(전제요건)을 成(성)하랴 하는가. 朝鮮(조선)의 學術(학술)을 發達(발달)시김도 可(가)하고, 詩歌小說(시가소설)을 發達(발달)시김도 可(가)하고, 宗敎(종교), 藝術(예술)을 發達(발달)시김도 可(가)하고, 政治(정치), 道德(도덕)을 發達(발달)시김도 可(가)하고, 經濟組織(경제조직)을 革新(혁신)함도 可(가)하도다. 그러나 『朝鮮(조선)의 學術(학술)』은 그 如何(여하)한 文章(문장)과 言語(언어)로써 發達(발달)을 期(기)할 터이며, 詩歌小說(시가소설)과 宗敎(종교), 藝術(예술)과 政治(정치), 道德(도덕)上(상)의 用語(용어) 及(급) 經濟上(경제상) 通語(통어)는 그 如何(여하)한 言語(언어)로써 充當(충당)하랴 하는가.

社會(사회)가 互相扶助體(호상부조체)이오, 組織體(조직체)이며, 此間(차간)의 意思疏通(의사소통)의 唯一(유일)한 機關(기관)이 言語(언어)이라 하면 此(차) 言語(언어)가 實(실)노 모든 文化運動(문화운동)의 根本(근본) 條件(조건)이 되며, 基礎(기초) 要件(요건)이 되는 것은 勿論(물론)이라. 然則(연즉) 此(차) 基礎的(기초적) 條件(조건)이 되는 朝鮮(조선)의 文法(문법)과 言語(언어)가 不完全(불완전)하고서 그 무슨 完全(완전)한 詩歌小說(시가소설)이 生(생)하며, 偉大(위대)한 雄篇傑作(웅편걸작)이 生(생)하며, 完全(완전)한 道德(도덕)과 宗敎(종교)와 政治(정치)와 經濟(경제)가 發達(발달)하리오.

이럼으로 吾人(오인)은 朝鮮人(조선인)의 文化(문화) 發展(발전)은 그 文法(문법)과 言語(언어)의 發展(발전)을 基礎(기초)하야 이에 비로소 그 結果(결과)를 可(가)히 期(기)할 것이라 하노라. 然則(연즉) 이 質素(질소)한 事業(사업)이 엇지 朝鮮(조선) 文化(문화)의 基礎(기초)를 定(정)하는 偉大(위대)한 事業(사업)이 아니며, 質素(질소)한 努力(노력) 中(중)에 朝鮮民族(조선민족)의 實(실) 價値(가치)와 實(실) 幸福(행복)을 企圖(기도)하는 根本(근본) 所以(소이)가 아니리오.

吾人(오인)은 一面(일면)에 在(재)하야 此(차) 會(회)가 健實(건실)한 發達(발달)을 遂(수)하기를 希望(희망)하는 同時(동시)에 一般(일반) 社會(사회)가 此(차) 會(회)에 對(대)하야 多大(다대)한 期待(기대)와 同情(동정)을 與(여)하기를 바라노라.

현대문
조선어연구회

그 의의가 중대하다


국가와 민족의 행복이 대단한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도 있으며, 꾸밈없고 수수한 노력에서 이뤄지는 것도 있으니

수많은 군사와 말이 내달리는 전쟁터에서 생명을 던져가며 자국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나, 혹은 천하의 영웅과 뛰어난 인재들이 한 곳에 모여 세계인의 운명을 논하여 정할 때 기기묘묘한 꾀와 신묘한 전략을 깊이 감추고 화려한 무대에 우뚝 서서 쳐들었다 눌렀다, 나아갔다 물러섰다, 줬다 뺐었다 자유자재로 변론하고, 종횡무진 거리낌 없는 수완으로 자국의 지위를 향상하는 것들은 모두 ‘대단한 광경’에서 한 나라의 행복을 꾀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의 칭찬을 받기 쉽고, 또 그 공들인 보람이 현저해 이 방면에 지원하는 사람이 허다하다.

반면 교실에서 분필을 들고 학생들의 두뇌를 일구는 것, 혹은 실험실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연구실에서 사물의 이치를 깊이 파헤치는 것 등등은 모두 ‘수수한 노력’으로 한 민족의 행복을 이루는 것이라 하겠다. 사람이 대체로는 그 노고를 알지 못하며, 따라서 그 공들인 보람을 인정하지 않고, 또 돌아보지 않으니 이런 까닭으로 이 방면에 지원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세계의 역사를 펼쳐보면 우리는 시대마다, 국가마다 이른바 위인, 걸사라는 정치가와 군사 전략가는 다수 발견할 수 있지만, 교육가나 학술연구자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근세에 이르러 다소 이 방면을 인정해주는 듯하지만, 대체로 논하자면 아직 ‘양념거리’에 그치는 정도다. 이는 인생 허영의 한 폐단이라고 어찌 개탄할 바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사회의 실상을 알면 알수록, 진화의 원칙에 통하면 할수록 이 들떠 허황한 사람들의 성품에 대해 염증이 생기고 반감이 일어나니 ‘대단한 광경’이란 것이 ‘수수한 노력’에 따른 실력과 발달을 동반하지 않고는 그 무슨 소용이 있으며, ‘수수한 노력’에 의한 실제 행복이 없고서야 그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정치가나 군인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오늘날 그 이상으로 학자와 농부와 실업가를 존경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존경할 뿐 아니라 힘써 그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진리를 우리는 조선어연구회에 대해 적용할 수 있으니, 첫째 그 발기인을 보니 10명에 못 미친다. 보통 모임의 발기인 수 30명에 비해 매우 소박한 줄을 가히 알겠으며, 신문에 보도된 바를 보면 10여 줄 분량에 3면 한 모퉁이를 차지하는데 그쳐 정치외교 기사가 수백 줄, 수삼 단을 점령하는 것에 비하면 매우 소박한 것임을 가히 깨닫겠으며, 그 창립 장소를 봐도 학교의 한 교실 안에서 한적한 가운데 두서너 학자의 손에 의해 첫 울음소리를 내는 지라 정치적 회합이나 정당 결성식의 굉장함에 비하면 그 얼마나 수수한가.

우리는 이 같은 수수함이 곧 세상 사람들의 부주의와 무관심을 나타내는 것임을 깨달을 때 일종의 노여움이 일어나며, 일종의 슬픈 느낌이 든다. 허영에 살고, 실제 처지를 무심히 버려두는 민족이 그 어찌 번영을 바라며, 학술을 도외시하고 헛된 이론에 성내는 민족이 그 어찌 승리를 기대하겠는가. 우리는 조선어연구회의 탄생을 환영하는 동시에 세상 사람들의 그 깨닫지 못함, 관심 없음을 개탄한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관찰한바 조선어연구회의 의의를 논해 연구회의 중대함을 명백히 밝히고자 한다. 과연 조선의 문화운동은 크고 왕성한가? 사람마다 입만 열면 늘 ‘문화운동’이라 말하는 줄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조선의 문화’는 그 무엇으로 기초를 지으며, 그 무엇으로 전제조건을 달성하려 하는가. 조선의 학술을 발달시키는 것도 좋고, 시가소설을 발달시키는 것도 좋고, 종교‧예술의 발달도 좋고, 정치‧도덕의 발달도 좋고, 경제조직을 혁신하는 것도 다 좋다. 그러나 ‘조선의 학술’은 그 어떤 문장과 언어로써 발달을 기약할 터이며, 시가소설과 종교, 예술과 정치, 도덕상 용어 및 경제상 통용되는 말은 그 어떠한 언어로 충당하려 하는가.

사회란 것이 서로 돕는 것이요, 조직체이며, 이들 사이의 의사소통의 유일한 수단이 언어라 하면 이 언어가 실로 모든 문화운동의 근본 전제조건이자 기초 요건이 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그런 즉 이 기초적 조건이 되는 조선의 문법과 언어가 불완전하고서야 그 무슨 완전한 시가소설이 있겠으며, 위대한 작품, 걸작이 나오겠으며, 완전한 도덕과 종교와 정치와 경제가 발달하겠는가.

따라서 우리는 조선인의 문화 발전은 그 문법과 언어의 발전이 기초가 돼야 비로소 그 결과를 가히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고로 이 수수한 사업이 어찌 조선 문화의 기초를 정하는 위대한 사업이 아니겠으며, 소박한 노력 중에 조선민족의 참 가치와 참 행복을 꾀하는 근본 조건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한편으로 이 조선어연구회가 건실한 발달을 해나가기를 희망하는 동시에 일반 사회가 이 연구회에 대해 크디큰 기대와 동정을 보내주기를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