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대해부 상(上)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두 왕조 국가가 별개로 도읍지로 정했던 터다. 한강을 경계로 강북의 한양도성은 조선의 수도였다. 강남에 자리잡은 하남위례성은 조선보다 1400여 년 앞서 백제 도읍지로 번성했던 곳이다. 하남위례성은 북방의 강국 고구려를 의식한 백제 시조 온조왕이 기원 전후쯤에 한강을 방어선 삼아 건설했던 도성이다.
강북과 강남은 땅의 족보도 서로 다르다. 산줄기의 시작점과 진행 방향, 종점 등을 족보 형식으로 도표화한 조선시대 책 ‘산경표’에 따르면 강북은 한북정맥에 속하고, 강남은 한남정맥에 속한다. 쉽게 말해 강남의 청계산이나 관악산은 강북의 북한산과는 그 계보가 완전히 다른 지맥(地脈)이라는 것이다.
백제의 하남위례성은 속리산을 뿌리로 둔 한남정맥의 산들이 남쪽을 받쳐주고 북쪽으로는 한강을 머리에 두고 건설됐다. 기원후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침략을 받아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기기까지 500년 가까이 수도로 번성했던 하남위례성 시기를 ‘한성백제’라고 부른다. 따라서 ‘서울의 원조’를 따지자면 경복궁과 사대문이 들어선 하북(河北,강북)이 아니라 하남위례성이 있었던 하남(河南,강남)이 될 것이다.
● 1500년 만에 부활한 ‘강남 백제’
한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강북과 강남은 땅의 뿌리가 다를 뿐만 아니라 발전사도 차이가 있다. 강북은 조선이 1394년 한양도성에 근거지를 마련한 후 620여년 넘게 대한민국 수도로서의 위상을 누려오고 있다. 반면 ‘원조 서울’인 강남은 백제의 천도 후 잊힌 땅이 됐다. 웅진 백제와 사비(부여) 백제에 가려진 ‘전설의 왕국’ 한성백제 땅은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박정희 정권의 강남개발 사업과 함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70년대 당시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지낸 손정목의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에는 강남개발 비화가 담겨 있다. 1970년 1월 박정희 정권의 실세 박종규 경호실장은 윤진우 서울시 도시계획과장을 불러 강남에서 가장 장래성 있고 투자 가치가 있는 곳을 물었다. “탄천을 경계로 그 서쪽 일대”라는 답이 나왔다. 탄천의 서쪽인 강남구 일대는 이후 부동산 투기 광풍이 불어닥쳤다. ‘영동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이라는 이름으로 400만 평의 땅이 개발됐다. 주택과 학교, 도로 등이 건설되면서 강남 부동산 불패 신화가 시작됐다. 강남이 급격히 발전할수록 강북은 상대적으로 처지는 역전 현상도 나타났다. 2012년 가수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로 세계적 유명세까지 탄 강남은 이제 21세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역이 됐다.
이를 순환론적 역사주의 시각에서 보면 한성백제가 1500년만에 ‘강남 백제’로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강남’이라고 할 때는 한강 남쪽에 위치한 지역 전체라기보다는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를 아우른다. 이 가운데서 강남구가 중심축이며, 그 핵은 북쪽의 한강과 동쪽의 탄천을 경계선 삼아 건축됐던 삼성동토성 일대라고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삼성동토성은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아파트와 빌딩 건설로 토성이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고, 지금은 토성 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옛 영광의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경기고교 동쪽 영동대로 언덕길에 세워진 삼성동토성 표지석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건국 초 한산에 도읍을 정하였던 백제는 고구려 및 신라에 대항하여 한강유역을 확보하기 위하여 이곳 옛 삼성리 일대에서 뚝섬 맞은편까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구릉을 따라 토성을 쌓았다. 토성의 유적이 최근까지 남아 있었으나, 강남 개발로 인해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 강남구는 지기(地氣), 송파구는 천기(天氣)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강남 개발은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1980년대에도 계속됐다. 전두환 정권은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탄천의 동쪽에 위치한 잠실지역을 개발했다. 2차 강남개발이 시작되면서 부동산 투자 열풍이 다시 불었다. 이 일대에 지어진 아시아선수촌아파트와 올림픽선수촌아파트, 잠실종합운동장 등은 잠실 송파 일대가 강남구, 서초구와 함께 강남으로 묶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성백제 시기의 유적 분포도. 풍납토성, 몽촌토성, 방이동고분, 석촌동고분이 시계방향으로 원형을 이뤄 송파구의 핵심지역인 잠실역 일대를 감싸주는 모양새다. 왼쪽은 탄천 건너편으로 강남구 삼성동토성이 위치했던 곳이다.
또 이들 유적은 하늘, 신, 제사 문화와 관련이 깊은 곳이다. 민가가 들어서 있는 풍납토성에서는 송파구가 본격 개발될 때 한성백제 시기의 유물이 다량 쏟아져 나왔는데, 특히 지배층이 제사를 지내던 신전인 여(呂)자형 집터와 신성한 우물 터가 발굴됐다. 이 때문에 풍납토성이 하남위례성이며, 인근의 몽촌토성은 비상시 풍납토성을 대체하는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 힘을 얻기도 했다.
한성백제의 위대한 정복군주 근초고왕 무덤으로 알려진 석촌고분의 제3호분 피라미드. 아쉽게도 이 고분 밑으로 석촌지하차도가 뚫려 있어 유적 훼손이 우려된다.
이 같은 배치는 송파 지역에 대한 백제인들의 지리적 감각이 반영된 결과로 보여진다. 풍수학적으로도 탄천을 경계로 송파구와 강남구는 다른 특징이 보여진다. 삼성동 토성이 자리했던 강남구의 삼성동과 청담동 일대는 땅의 지기(地氣)가 강성한 명당이라면, 송파구는 하늘과 소통하며 그 기운을 잘 받아 내리는 천기(天氣) 터가 발달했다고 볼 수 있다.
● 강남의 운세, 지금이 절정
송파구의 상징이 되다시피한 롯데월드타워. 2020년 현재 세계에서 5번째 높은 빌딩이다.
이로 적용하면 현재 강남구와 송파구는 기운이 이미 절정기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강남구에선 강남역 부근에 화려하게 들어선 삼성 사옥과 삼성동 옛 한국전력 부지에 지어질 현대자동차그룹의 마천루(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가 정점을 보여주는 랜드마크가 될 것이다. 특히 2026년까지 지상 105층 규모로 건설될 GBC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송파구에선 2017년에 개장한 신천동의 롯데월드타워가 정점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지상 123층, 높이 555m에 달하는 롯데월드타워는 2020년 현재 대한민국 최고층 건물이자 세계에서 5번째로 높은 건물로 링크돼 있다.
안영배 논설위원·풍수학박사
안영배 논설위원·풍수학박사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