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취임, 조국·윤미향 사태 거치며… 통합 평등 공정 양심 도덕 상식 정의 말뜻 다르게 쓰는 ‘문재인 어족’ 탄생, 秋 이후 조롱거리 된 法治 ‘법의 지배’ 檢言→權言유착·부동산→罪·세금→罰
박제균 논설주간
문 대통령은 당선 직후 대국민 메시지에서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분들도 섬기는 통합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고 다음 날 취임사에서는 “오늘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가 말하는 ‘통합 대통령’과 ‘국민통합’이란 용어가 이런 뜻일 줄은. 문 대통령이 역대 어느 정권보다 극심한 ‘국민분열’을 자초한 ‘분열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대통령의 언어는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다. 문 대통령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임명하면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정말 엄정한 자세로 임하라’고 당부했다. 그 말을 믿고 산 권력에 손을 댄 윤 총장은 지금 어떻게 됐나. 이미 수족이 다 잘린 터에 엊그제 인사에서는 ‘정권의 충복(忠僕)들’에게 둘러싸여 말 그대로 고립무원 신세다. 대통령의 언어가 이럴진대, 우리 사회의 언어가 온전할 리 없다.
이어 터진 윤미향 사태는 이런 의문을 던졌다. 과연 이 나라에 정의(正義)는 있는가. 사태가 터진 지 석 달이 넘었다. 아직도 국회의원 윤미향에 대한 소환조사조차 못 하고 있다. 이제 정의라는 단어의 뜻을 ‘약자의 정의’와 ‘강자의 정의’로 나눠서 해석해야 하나.
정의를 담보해야 할 법치(法治)라는 말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등장과 함께 조롱거리로 전락한 느낌이다. 그런 추 장관이 지난달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금처럼 오로지 공정과 정의에만 집중하겠다”고 썼다. 한마디로 ‘졌다’. 또 3일 신임 검사들에게는 “스스로에게는 엄격하게, 상대방에게는 봄바람처럼 따스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마음에 거리낌 없이 훈시하는 그를 보고 다시 한 번 ‘졌다’.
법치의 기본원리는 ‘법의 지배(rule of law)’다. 윤석열 총장이 신임 검사들에게 법의 지배를 강조했더니, 한 여당 의원이 “과감한 발상이 매우 충격적”이라며 “일반인의 입장에서 법의 지배 같은 무서운 말들은 꽤 위험하게 들린다”고 논평했다. 혹시 법의 지배란 말을 처음 들어보고, ‘지배’란 단어의 어감 때문에 그렇게 반응한 것은 아닌가. 법의 지배는 군왕(君王)이나 독재자 같은 자의적 권력보다 법을 우위에 둠으로써 ‘법 앞에 평등’이라는 기본권을 보장한다는 의미다. 법을 세워야 할 국회의원이란 사람이 법치의 기본원리조차 모르니 할 말이 없다.
이러니 ‘검찰개혁’이라 쓰고 ‘검찰장악’이라고 읽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검찰개혁이란 말은 원래 두 가지 의미를 담는다. 정치권력으로부터의 검찰 독립과 과도한 검찰권한의 축소. 그런데 문 정권 사람들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후자보다 중요한 전자를 깡그리 무시한다. 오히려 노골적인 검찰 길들이기, 검사 줄 세우기를 하면서 입으로는 당당히 ‘검찰개혁’을 말한다. 이후 다른 정권이 본받을까 겁난다.
이제 ‘검언(檢言)유착’ 의혹마저 실체가 없고, 실상은 ‘권언(權言)유착’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부동산=죄악’ ‘세금=징벌’로 어감이 바뀐 지도 오래다. 얼마나 더 낙인을 찍고, 프레임을 짜며, 거짓 조어(造語)를 하고, 말뜻을 왜곡해 우리말을 오염시킬 건가. 국민을 ‘편 가르기’한 것도 모자라 언어마저 편 가르기 하나. 갈라진 국민은 계기가 있으면 다시 통합할 수 있지만, 말이 안 통하면 소통 자체가 불가능한 딴 나라 국민이 된다. 집권 3년여 만에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참으로 ‘이상한 문재인 랜드’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