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능력 관리가 최고의 화두인 기업들 이해관계자 공감 못 얻으면 한순간에 퇴출
하임숙 산업1부장
글로벌 화장품 회사들에 제품을 납품하는 것으로 매출액 2조 원을 넘긴 한국의 어느 화장품 회사는 제품 개발팀에서 이런 논의를 진행했다. 직원이 아프리카에 출장 가서 현지인들에게 피부 관리를 위한 마스크시트를 선물했더니 너무도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시장 가능성을 타진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은 화장품도 일대일 고객 맞춤형이 뜬다. 그런 시대에 마스크시트의 색상을 고민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 회사는 아직은 검은색 원단을 확보만 해둔 상태다. 미국 시장에서도 수요가 있을지 시장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은색 마스크시트가 제품화될지는 현재로선 모른다. 거꾸로 인종차별 이슈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객과 어떻게 공감할 것인가’라는 이 회사의 고민은 요즘 기업 대다수의 고민을 대표한다.
기업들이 예전보다 더 많이 공감능력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공감능력을 키워놓지 않으면 새로운 시장의 기회를 놓칠 뿐만 아니라 좀 과장해 말하자면 기업의 생존까지 위협받는 일이 종종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무대응으로 일관하던 저커버그가 수습에 나서도록 이끈 건 광고 중단 사태만이 아니라 초기부터 CEO를 비판하며 온라인 파업까지 벌였던 내부 직원의 목소리였다. 삼성전자 북미법인이 페이스북 광고 중단에 동참한 것도 북미법인 직원들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다. 이처럼 공감의 대상은 불특정 다수인 소비자에 그치지 않는다. 내부 직원들, 나아가 협력업체들, 지역사회까지 포괄한다.
미국의 전경련이라고 볼 수 있는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은 지난해 12월 ‘기업은 투자자들만이 아닌 모든 사람을 위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획기적인 발표를 했다. 아마존, JP모건체이스 등 유명 기업 180여 개의 총수들이 참가한 ‘기업 목적에 대한 성명서’에서다.
경영진은 그동안 투자자 혹은 주주를 위한 활동을 최우선시하곤 했다. 성명서를 발표한 CEO들은 주가 관리보다 더 중요한 게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조율이고 사회적 가치라고 선언한 것이다. 이들이 실천 방안으로 내놓은 게 공정한 임금, 직원들에 대한 투자, 사회 봉사, 환경 보호 등이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이 발표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좋은 물건을 남보다 빨리 만들어서 내놓으면 잘 팔리던 시대의 종식 선언으로 보였다. 직원들, 협력업체, 지역사회와 공감하지 못하면 기업이 한순간에 죽을 수 있다는 것 아니겠나. 그룹 내 계열사 CEO들에게도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보냈다.”
하임숙 산업1부장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