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건 속초 동아서점 운영자
―정영목,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중
사소한 한마디에 꽂혔다. 그냥 지나쳐도 좋을, 모르긴 몰라도 저자 스스로도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말했을 그 말 앞에 멈춰 섰다. 자신이 번역한 책들 중 개정해 번역하고 싶은 작품이 있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그는 ‘전부 다’라고 대답하며 위와 같이 덧붙였다.
‘끝도 없이’는 영원하다는 뜻이다. 그가 쓱 내뱉은 한마디에서, 자신의 업(業)을 ‘영원히’ 떠맡은 한 사람의 소명의식을 엿본다. 얼른 일을 끝내고 쉬고 싶은 게 아니라, 이 일을 완벽히 해내려면 끝이 보이지 않는 아득함 속으로 걸어가야 한다는 사뭇 비장한 선언처럼 들린다. 한편 ‘허락한다면, 끝도 없이 고칠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건, 그가 어느 지점에선가 타협해 일을 마쳤음을 상기시킨다. 그 지점이란 계약 기간일 수도, 육체적 한계일 수도 있고 둘 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계 앞에서의 체념은 그를 겸허히 다음 작업으로 인도하고, 나아가 더 훌륭한 작업을 가능하게 한다. 저 한마디가 품은 업에 관한 모순된 두 가지 태도는 내게 이렇게 조언하는 듯하다. “네가 더 잘할 수 있다고 해도 너는 어디에선가 멈춰야 한다. 하지만 그건 끝이 아니다. 네 스스로 답을 찾을 때까지 영원히 네 일을 해라.”
나는 이 책을 서점 ‘번역’ 서가에 한 권, 그리고 ‘장인정신’ 서가에 한 권 꽂아두었다. 누군가 ‘장인정신’ 서가 앞을 서성이다가 “웬 번역 책이 여기에?” 하며 놀랄지도 모르겠다. 책이 잘못 꽂힌 것 같다며 내게 일러준다면 뭐라고 설명해드리는 게 좋을까. 밤이 오면 문을 닫고, 다시 아침이 밝으면 문을 연다. 매일 아침엔 그날의 새로운 책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곳이 내가 멈춰 서는 곳이다. 한정 없이 하고 있으라면 한 책을 갖고 끝도 없이 여기 꽂았다 저기 꽂았다 반복할 테니까.
김영건 속초 동아서점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