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 현문 스님 “기록 자체가 없는게 큰 문제”
통도사 주지 현문 스님이 용화전 미륵불소조좌상의 복장유물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나온 구하 스님의 연기문(緣起文)을 펼쳐놓고 4일 설명하고 있다. 이 문서에는 국군 상이병 3000여 명이 입사(入寺)했다가 퇴거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양산=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4일 찾은 통도사의 대광명전 벽면에는 입원 중인 병사들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낙서들이 여럿 보였다. “통도사와 이별한다” “停戰(정전)이 웬 말?” 등의 문구뿐 아니라 탱크와 트럭, 아이 얼굴 등 다양한 그림들도 있었다. 대광명전에 낙서가 남아 있는 것은 다른 전각과 달리 개·보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찰 전각과 어울리지 않는 이 낙서들은 미스터리였다. 뜻밖에도 실마리는 지난해 9월 인근 용화전 미륵불소조좌상의 복장유물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당대의 고승으로 명성이 높았던 구하 스님(1872∼1965)이 붓글씨로 쓴 연기문(緣起文)이 나온 것. 연기문에는 불상과 전각 조성 과정뿐 아니라 당시 상황을 언급했는데, 국군 상이병 3000여 명이 입사(入寺)해 퇴거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6·25전쟁 당시 부상병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통도사 대광명전의 낙서. 양산=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올 2월 국방부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6·25전쟁 때 경북 영천 전투 중 중상을 입고 통도사에서 치료받다가 숨진 박모 소위를 전사자로 인정했다. 사망 당시는 소집 해제돼 민간인 신분이었지만 전투 중 사망을 뜻하는 전사로 인정한 첫 사례였다.
동아일보 1951년 10월 24일자도 분원의 존재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지난 22일 제31육군병원 통도사분원에 정양(靜養) 중인 상이장병들에게 양말 1600족(足)을 대통령비서실로 하여금 동(同)병원 통도사 분원장 장○○ 군의(軍醫)중령에게 전달하게 하였다.”
제31육군병원 통도사 분원은 전쟁 중 자료 소실 등으로 공식적인 확인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최근 긍정적인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국방부 대변인실은 4일 보낸 공문을 통해 “국내와 미국에서 수집한 자료들을 검토하고,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에서 추진하는 6·25전쟁사 연구에 참고하도록 하겠다”는 내용을 보내왔다.
통도사 측은 육군병원 통도사 분원이 군과 사찰, 나아가 정부와 민간이 국난 극복을 위해 함께 노력한 소중한 사례로 재조명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지 현문 스님은 “무슨 보상을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다”라며 “군병원으로 사용돼 스님들이 절을 비우다시피 하며 희생했고 사찰 훼손도 적지 않았는데 기록 자체가 없는 게 큰 문제”라고 말했다.
양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