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도쿄 특파원
이 친구가 바로 박지원 국가정보원장(78)이다. 박 원장은 당시 전남 목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둘은 1999년 10월 제주도에서 열린 한일 장관 회의에서 처음 만나 21년간 인연을 이어왔다. 당시 각각 문화관광 분야 장관이었던 둘은 만나자마자 마음이 통했다. ‘노회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정무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을 얻고 있는 것도 유사했다.
세 살 차이인 두 사람은 ‘의형제’ 연을 맺고 이후에도 긴밀한 관계를 이어갔다. 한일 양국 역시 한국의 일본 문화 개방, 2002년 한일 월드컵 등을 계기로 협력했다. 양국 장관 회의도 일본 오사카, 센다이 등에서 계속 열렸다.
둘은 아직도 끈끈한 사이다. 2018년 박 원장이 배우자를 떠나보내자 니카이 간사장은 아들을 한국으로 보내 조문했다. 지난해 니카이 간사장이 부인을 여의자 박 원장이 일본으로 건너가 직접 영결식에 참석했다. 인생의 황혼기를 맞아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낸 사람만이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이 양측의 조문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지난해 일본의 반도체 수출 규제로 한일 관계가 극한 갈등을 빚을 때 내로라하는 한국 국회의원이 잇달아 일본을 방문했다. 하지만 니카이 간사장 등 일본 고위 인사를 만난 사람은 드물었다. 박 원장은 지난해 8월 오사카에서 니카이 간사장과 5시간 반 동안 비공개 회동을 하며 징용 문제를 협의했다.
지난달 박 원장이 국가정보원장에 임명되자 한일 언론은 모두 ‘남북 관계 진전을 위한 인사’라고만 분석했다. 기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남북 관계는 물론이거니와 사상 최악인 한일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 인사라고 본다.
박 원장과 니카이 간사장이 서로의 직접적인 카운터파트는 아니다. 하지만 상대 국가를 방문할 때 일부러 시간을 내 꼭 만나는 ‘의형제’다. 더구나 현재 둘 다 양국 최고 권력자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아는 위치에 있다.
일본 외교가에는 ‘가부키(歌舞伎·일본 전통연극)’라는 은어가 있다. 말 그대로 알맹이 있는 일은 하지 않으면서 여론을 의식해 일만 하는 ‘연극’을 벌인다는 의미다. 일본 고위 인사는 “한국 외교부와 일본 외무성이 관계 개선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 같지만 아직은 가부키에 불과하다. 두 나라 최고 지도자의 의중을 파악하는 실세가 움직여야 문제가 풀린다”고 귀띔했다. ‘머리’보다 ‘가슴’으로 대화하는 박지원-니카이 라인에 양국 관계 개선의 기대를 거는 이유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