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첫 코로나 백신’ 선언 후폭풍 3상 시험 안 거치고 서둘러 출시… 백신 이름 ‘스푸트니크 V’로 붙여 냉전시대 美와 경쟁 우위 연상 英연구진 “물보다 나을 게 없다”
러시아 보건부 산하 모스크바의 가말레야 국립 전염병·미생물학 센터가 개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모스크바=AP 뉴시스
영국 서식스대 연구진은 이날 더선에 “여러 과정이 생략됐다. 특히 3상 시험 생략은 전례가 없어 물보다 나을 게 없는 백신을 접종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바이러스 전문가인 콘스탄틴 추마코프 글로벌바이러스네트워크 연구원은 미 워싱턴포스트(WP)에 “3상 시험 결과에 대한 평가가 나오기 전에 일반인에게 백신을 접종하는 일은 도박”이라며 “러시안 룰렛 같다”고 질타했다. 유명 의학 전문 기자인 샌제이 굽타 미 CNN 기자는 “3상 시험 결과가 나오지 못해 지지부진했던 2014년의 에볼라 백신 개발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1, 2, 3상 임상시험은 의약품 개발의 국제 표준이다. 3상에서 대규모 인원을 대상으로 백신의 안전성을 최종 입증해야 상용화가 가능하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자국 백신이 이달 초까지 2상 시험을 거쳤다고 발표했을 뿐 이에 관한 세부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단순히 3상 시험만 건너뛴 수준이 아니라 2상 시험의 안정성조차 담보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미국 모더나와 화이자,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중국 시노팜과 시노백 등의 개발사가 검증된 첫 백신 개발에 성공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3상 임상시험에 들어간 상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각국이 국제 공조보다 코로나19 첫 백신 개발국이 되기 위해 애쓰고 있다”며 백신 패권주의를 우려했다.
세계 4위 코로나19 감염국이며 부실한 방역, 경제난 등으로 최근 지지율 하락에 직면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백신을 대내외적 선전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 역시 끊이지 않는다. 러시아는 이 백신에 ‘스푸트니크 V’란 이름을 붙였다. 냉전 시절인 1957년 소련이 인류 최초로 쏘아올린 인공위성 이름과 똑같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를 철저히 의식한 이름인 셈이다.
안전성 우려가 크지만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동남아, 중남미, 중동 일부 국가는 러시아 백신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이날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러시아 백신을 직접 맞겠다고 말했다. 그는 “백신이 도착하면 공개적으로 나부터 직접 접종하겠다. 푸틴 대통령의 백신 무상 공급 제안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러시아 측은 20개국 이상이 10억 회분의 백신 공급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백신 개발 자금을 댄 러시아 국부펀드 RDIF의 키릴 드미트리예프 대표는 “러시아 백신에 대해 조직적이고 치밀한 정보 공격이 이뤄지고 있다. 서방의 정치적 접근은 오히려 그 나라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