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딸도 맞고 효과 봤다는 백신의 이름은 ‘스푸트니크 V’. 1957년 소련이 인류 최초로 쏘아올린 인공위성 이름을 땄다. 그러나 스푸트니크호의 영광을 재현하기엔 안전성 관리가 허술하다. 38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1상과 2상이 한꺼번에 진행돼 지난달 중순 끝났다. 최종 3상은 정부 승인이 난 다음 날인 12일에야 적정 인원의 5.3%인 1600명을 대상으로 시작됐으며 다음 달 생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1, 2상 결과도 공개되지 않았다. “과학적 비밀주의는 러시아 전통이며, 스푸트니크호를 발사했을 때도 5일 후 공개했다”는 게 러시아 측 해명이다.
▷러시아의 조급증을 자극한 건 중국이다. 미국 연구소들 중 상당수가 코로나19로 문 닫은 사이 중국이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현재 3상 단계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진 백신 후보물질 7개 가운데 4개의 국적이 중국이다. 중국 정부는 이 중 중국군사의과학원과 바이오기업 칸시노가 공동 개발 중인 후보물질에 대해 3상 이전인 6월 인민해방군을 대상으로 한 제한적 접종 승인을 했다. 러시아보다 한발 빨랐던 셈이다.
▷러시아와 중국의 백신 신뢰도는 높지 않다. 중국에선 2017년 DPT 백신 결함이 적발된 데 이어 2018년 인간 광견병 백신 데이터가 조작돼 생산이 중단되는 스캔들이 터졌다. 푸틴 대통령은 가말레야 연구소가 개발한 에볼라 백신의 효능이 세계 최고라고 자랑했으나 WHO 공식 문서엔 1상도 끝나지 않은 것으로 나온다. 전문가들은 엉터리 백신도 문제지만 백신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예방접종 기피 현상이 벌어질까 우려한다. 63년 전 스푸트니크호는 미국을 자극해 우주 개발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안전성을 무시한 백신 체제 경쟁은 인류에 재앙이 될 수 있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