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관계 해결 의지 없는 정부… 사회 이끄는 5060세대 일본에 무지 美中 역사 잊지 않고 日 연구하는 사이, 광복 이후 우리는 얼마나 공부했나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양국 정부와 대중 다 마찬가지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는 한국과의 마찰이 그리 싫지 않은 표정이다. 지지율에 도움이 되면 됐지 마이너스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이제껏 본 적이 없는 일본 대중들의 반한감정 표출이 있다. ‘한국 때리기’는 시청률 상승으로 직결된다. 어중이떠중이가 나와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연일 한국을 비판한다. 주한 일본대사였던 한 인사는 ‘한국에 안 태어나서 다행이다’라는 혐한(嫌韓) 책으로 재미를 보더니 연신 미디어에 나와 한국을 매도한다. 명색이 일국의 대사였던 사람의 모습에 많이 당황했다.
그럼 한국은 의지가 있는가.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서 살아온 지난 20년 동안 한국 정부의 대일정책은 대체로 우리 일본 전문가들의 의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몇 개의 예외를 제외하면 내 주변 일본 전문가들이 얘기하고 토론하던 방향이 곧 정부 방침으로 나타났다. 나야 역사학자이니 그럴 기회가 없지만 일본 정치, 경제, 안보 등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수시로 정부 부처를 드나들고 어떤 경우에는 청와대도 출입하며 대일정책을 조언했고 정부도 이를 존중했다. 그런데 이 정부 들어서 내 주변 일본 전문가들이 갑자기 한가해졌다. 외교부도 청와대도 그들의 의견에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들이 미디어에 입이 닳도록 제시하는 ‘해결 방식’은 인터넷상에서 죽창에 매달려 효수되곤 한다. 일본 문제에 일본 전문가의 의견이 필요 없다면 그들을 왜 양성한 것이며 한국의 일본학은 왜 필요한 것인가.
현재 한국의 오피니언 리더인 50, 60대는 근대 이후 일본을 가장 모르는 세대일 것이다. 그 윗세대는 식민지 경험이 있거나 일본어를 조금이라도 아는 세대이고 그 밑 세대는 일본 문화를 일상적으로 접하고 어린 나이에 일본 여행 등을 통해 일본 체험을 그런대로 한 세대다. 그러나 50대와 60대는 일본과의 교류가 가장 적었던 1970, 80년대에 청춘을 보낸 사람들이다. 그들은 곧잘 미국의 시각에서 일본을 본다. 미국에 일본은 우리에게만큼 중요한 나라는 아니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처럼 일본을 경시하지는 않는다. 중국은 20세기에 일본과 14년간에 걸쳐 전쟁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수백만 명이 죽어 나갔으며 당시 중화민국 수도 난징(南京) 한복판에서 일본군의 학살을 경험한 나라다.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적개심은 우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천황을 굳이 일왕이라고 부르지도 않으며, 욱일기를 매단 자위대 함대 입항을 취소하지도 않는다. 일본은 이미 맛이 간 나라라는 만용도 부리지 않고 오히려 일본을 또 연구하고 또 관찰한다. 그들이 신친일파거나 토착왜구라서 그런 게 아니다. 두 번 다시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1910년 조선이 망한 것은 반일감정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일본을 증오하고, 규탄하는 사람들은 전국에 넘쳐흘렀고, 일본을 깔보고 멸시하는 사람들도 사방에 빽빽했다. 모자랐던 것은 메이지 유신 이후 40여 년간 일본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 그게 우리의 운명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파악한 사람이었다. 다시 광복절이 다가온다. 광복 후 이렇게 한일 간 국력 차가 좁혀진 적은 없었다. 그러나 섣불리 우쭐거리는 것은 독약이다. 장차 우리가 일본을 정말 앞서는 날이 와도 우리는 일본을 경시하는 맨 마지막 나라가 되어야 한다.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