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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의사로 여는 ‘인생 2막’[현장에서/김수연]

입력 | 2020-08-14 03:00:00


이달 말 정년퇴임하는 권성준 한양대 의대 교수. 한양대 제공

김수연 정책사회부 기자

위암 분야 권위자인 권성준 한양대 의과대 교수(65)의 ‘인생 2막’ 계획을 다룬 인터뷰(13일자 동아일보 A2면 참조)에 많은 독자들이 찬사를 보냈다. 13일 온라인 기사에는 감사와 응원의 댓글이 이어졌다.

‘이런 자세가 바로 현대판 슈바이처 정신 아닐까요?’

‘요즘 눈 버리고, 귀 버리는 뉴스는 안 보려 했는데 간만에 머리가 깨끗해지네요.’

권 교수는 이달 말 정년퇴임한 뒤 내년 1월 강원 양양군의 보건소장으로 부임할 예정이다. 대한위암학회장과 한양대병원장 등 화려한 이력을 써온 그의 정년퇴임을 앞두고 여러 대형병원이 좋은 조건을 내밀었다. 그는 정중히 거절했다. 의료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 찾아가 주민들의 건강을 돌보는 일로 여생을 보내고 싶어서다.

권 교수의 선택에 사람들이 뜨겁게 호응하는 이유는 요즘 우리 의료계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지방으로 갈수록 주민들의 평균연령이 높아진다. 그만큼 많은 의료인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그런데 인프라가 뒤떨어진 지역에는 의사가 부족하다. 또 외과처럼 생명과 직결된 전공 분야의 지망생은 계속 줄고 있다. 노동 강도와 난도에 비해 현실적 보상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의료 불균형은 최근 우리 사회를 달구는 뜨거운 이슈 중 하나다. 어수선한 의료 현실 속에서 돈과 권위를 마다하고 지방에서의 의료 봉사를 택한 권 교수의 스토리가 많은 이에게 울림을 준 이유다.

감동과는 별개로 노년의 ‘인생 2막’ 자체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100세 시대에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건 젊은 날 무엇을 했든 간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은퇴 시점이 다가오자 권 교수가 스스로에게 던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은 모든 중장년에게 따라다니는 고민거리다.

권 교수는 예상 외로 간단한 ‘꿀팁’을 줬다. 지금부터 당장 기록을 시작해보라는 것. 나 자신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바로 나. 그러므로 글로 자신과 대화해야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권 교수는 자신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의 기억부터 차례대로 일기를 쓰듯 적어보라고 했다. 그가 그렇게 적은 삶의 기록을 출력해보니 A4 용지로 1100장이나 됐다고 한다.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에 대한 답이 나왔다는 게 권 교수의 팁이다.

모두가 권 교수처럼 화려한 이력으로 기록을 채울 수는 없다. 그러나 각자 삶의 기록은 자신이 가장 잘 쓸 수 있다. 인생 2막이 막연하고 어렵게 느껴진다면 권 교수의 조언대로 당장 오늘부터 기록을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김수연 정책사회부 기자 sy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