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톡-위챗 퇴출’ 싸고 美中 충돌
이건혁 산업1부 기자
트럼프 대통령이 틱톡과 위챗의 퇴출 근거로 삼은 것은 ‘안보’다. 트럼프 대통령은 “틱톡은 중국 공산당의 허위정보 캠페인에 이용될 수 있고, 위챗은 미국인 개인정보가 중국 공산당에 유출될 수 있다”고 했다.
미 정부의 주장에 대해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은 갈린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민감했다. 당장 국내에서만 해도 인터넷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틱톡, 위챗 등을 포함해 ‘꼭 지워야 할 중국 앱’ 리스트가 돌기도 한다. 틱톡 등 중국 앱에 대한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건 중국 정부에 대한 글로벌 소비자들의 우려가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를 이용해 중국의 정보기술(IT) 분야 영향력을 감소시키는 전략을 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다운로드 20억 건 넘는 인기 SNS 틱톡, 미국서 퇴출 위기
○ 개인정보 중국 정부로 넘어가나…전문가들 “증거는 아직, 검증 어려워”
틱톡을 코너로 몰아넣은 건 세계 각국 사용자의 정보가 동의 없이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의심이다. 이 정보가 중국 정부에 제공돼 다른 목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확산되고 있다.
일단 틱톡 사용자 정보가 적법한 절차 없이 해당 국가 이외의 서버로 이동됐다는 조사 결과는 있다. 한국방송통신위원회는 7월 틱톡이 개인정보를 미국과 싱가포르의 클라우드 서버로 옮길 때 고지해야 할 사항을 공개하거나 알리지 않았다며 과태료를 부과했다. 앞서 인도 정부도 개인정보를 해외로 반출하는 절차 등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틱톡 등 중국산 앱의 사용을 금지했다. 다만 IT업계에서는 고의보다는 실수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틱톡 측도 방통위의 행정 처분을 받은 뒤 재발 방지 조치와 함께 시정명령 이행 결과를 내놓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더 민감한 문제는 틱톡을 통해 수집된 개인정보가 중국 공산당에 넘어갔냐는 점이다. 틱톡은 공식적으로 “중국 정부에 사용자 정보를 제공하거나 콘텐츠 제거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정보 보안 전문가들과 IT업계에서는 의심할 만한 정황은 있다고 본다. 바이트댄스가 중국 당국과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점, 틱톡 프로그램과 통신을 주고받는 인터넷주소(IP주소)의 30% 이상이 중국이라는 점 등이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이트댄스가 중국 정부에 개인정보를 실제로 넘겼다는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상황이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사용자들의 정보가 중국 정부에 넘어갔다는 기술적인 증거가 공식적으로 나왔다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다만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바이트댄스가 미 정부나 외부기관으로부터 의혹 해소를 위한 검증을 받을 가능성은 낮아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11일(현지 시간)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틱톡이 네트워크 기기에 부여되는 12자리 고유식별번호인 맥 주소를 최소 15개월 동안 무단 수집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제공하는 구글은 앱 제작사들이 맥 주소를 수집하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다. 모바일 앱 분석업체 앱센서스 창업자 조엘 리어든은 WSJ에 “맥 주소 수집 목적이 통상 사용자 맞춤형 광고를 제공하는 것 외에는 없다”며 다른 목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낮게 봤다. 맥 주소를 수집하는 앱이 틱톡뿐만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 ‘메이드 인 차이나’에 대한 불신
틱톡을 포함한 중국산 앱들의 개인정보 유출 의혹은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한국에서는 수년 전 중국 IT 기업들이 제작한 보안용 앱들이 국내외 다른 앱에 비해 개인정보를 과도하게 요구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중국 IT 업체 TCL이 만든 ‘기상 예측’ 앱이 사용자 동의 없이 위치정보와 이메일 등을 수집한 사실이 영국 보안업체에 의해 공개되기도 했다.
중국산 SNS에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올리면 사용자도 모르게 삭제 조치되는 사례는 수시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IT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와 정부의 데이터 제출 요구에 응하도록 하는 사이버보안법도 비판 받는 대목이다. 최근 홍콩 사태와 홍콩 보안법 제정,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원인 등과 관련해 중국 정부가 SNS 감시를 강화한 것도 중국을 향한 국제 여론을 부정적으로 만들었다.
이 같은 전적 탓에 소비자들은 틱톡을 포함해 중국 기업들이 만든 앱은 중국의 검열을 받고 있고, 언제든 개인정보 유출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의심을 품고 있다. 한국에서 중국산 앱 목록이 공유되고 이를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호응을 얻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국내 보안업체 관계자는 “대중적으로 쓰이는 중국 앱은 기술적으로는 정상이며 악성코드 등이 탐지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의 우려가 계속되는 건 ‘메이드 인 차이나’에 대한 신뢰가 약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 미중 간 IT 패권 전쟁…G2 사이에 낀 한국
미국이 다소 근거가 약한 안보 문제를 근거로 틱톡, 위챗 퇴출에 나선 건 미중 갈등이 계속되면서 IT 분야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미국연방통신위원회(FCC)는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ZTE 등을 국가 안보 위협 대상으로 공식 지정했다. 바이트댄스, 텐센트와의 거래를 금지하는 행정명령도 9월 15일 이전에 효력이 발효될 예정이다.
이에 더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5일(현지 시간) “해저케이블을 통해 중국이 지식재산과 개인정보를 빼내가지 못하게 할 것”이라며 알리바바, 바이두 등 중국 IT 기업들의 클라우드 시스템까지 추가로 겨냥했다. 미중 갈등이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신기술 등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 IT 패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계속 대립하는 것은 달갑지 않다. LG유플러스는 경제성 등을 이유로 화웨이의 5세대(5G) 이동통신 장비를 도입했지만 미국이 보안 이슈를 계속 제기하면서 곤란한 상황에 놓여 있다. 국내 게임업계와 IT업계는 텐센트와의 거래를 금지한 행정명령의 파급 효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텐센트는 카카오 지분 5.6%를 보유한 것을 비롯해 여러 국내 기업에 투자를 하고 있다. 이번 행정명령의 효력은 위챗과 관련된 분야에 한정됐지만, 미국 화웨이 사례처럼 동맹국들의 참여를 촉구하며 반(反)중국 전선 구축에 나서면 국내 기업들도 텐센트와의 협력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IT 분야에서의 미중 갈등도 G2 패권 전쟁의 한 축인 만큼 단기간에 마무리될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 미국과 중국 모두 한국의 중요한 파트너이자 시장인 만큼 제대로 된 대응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건혁 산업1부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