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비가 줄기줄기 눈물일진대
세어보면 천만 줄기나 되엄즉허이,단 한 줄기 내 눈물엔 베개만 젖지만
그 많은 눈물비엔 사태가 나지 않으랴.
남산인들 삼각산인들 허물어지지 않으랴.
야반에 기적소리!
고기에 주린 맹수의 으르렁대는 소리냐
우리네 젊은 사람의 울분을 뿜어내는 소리냐
저력 있는 그 소리에 주춧돌이 움직이니
구들장 밑에서 지진이나 터지지 않으려는가?
‘상록수’의 작가, 그러니까 소설가로 알고 있지만 심훈은 재능이 많은 ‘멀티플레이어’였다. 그는 3·1운동에 참여한 민족운동가였고 동아일보 기자였으며 시인이자 연극인, 배우, 각본가, 영화감독이기도 했다. 심훈은 다재다능할 뿐만 아니라 민족애와 열정이 넘치는 인물이었다. 그가 쓴 시만 봐도 알 수 있다. 예술적으로 엄청난 수준에 올랐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작품 안에 끓는 민족애는 손꼽을 정도로 탁월하다. 심훈은 하고 싶은 일도 많았고, 하던 일도 많았는데 마흔도 되기 전에 갑자기 전염병에 걸려 병사하고 만다.
‘동우’는 겨울비라는 뜻인데, 요즘 우리를 괴롭히는 장맛비와는 좀 다르다. 여기서의 빗줄기는 천만 동포의 가슴 안에 내리는 눈물비요, 하나하나 소중한 염원을 담고 있는 마음의 줄기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빗줄기들은 연약해 보이지만 다 같이 모일 때 현실을 변혁할 수 있다. 실제 우리도 가는 빗줄기들이 모여서 엄청난 산사태를 일으키는 양을 오늘도 보고 있지 않은가. 물론 심훈의 산사태는 보다 상징적인 것이었다. 그는 동포의 모든 마음들이 모여 민족의 자유를 도모할 수 있다고 보았다. 절절한 민족애가 아닐 수 없다. 심훈은 일찍이 죽어 묻혔지만 그의 염원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적어도 광복절을 맞이하는 우리 마음이나 영혼의 어느 한 부분에는 말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