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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대선 이기면 차기 후보 0순위… 해리스, ‘백악관 주인’까지 꿈꾼다[글로벌 포커스]

입력 | 2020-08-15 03:00:00

美 첫 非백인 여성 부통령 후보, 민주당 해리스의 도전장




미국 야당 민주당의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오른쪽)과 부통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이 13일(현지 시간) 델라웨어 윌밍턴에서 보건 전문가들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화상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11일 해리스 의원이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후 두 사람은 12, 13일 이틀 연속 공동 연설에 나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코로나19 대책을 강력히 비판했다. 델라웨어=AP 뉴시스

11일 미국 야당 민주당의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78)이 장고 끝에 자메이카계 흑인 부친과 인도 타밀족 모친을 둔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56·캘리포니아)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그는 세 번째 여성 부통령 후보지만 비백인 여성으로는 처음인 데다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하면 곧바로 차기 대통령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 된다는 점에서 각별한 주목을 받고 있다. 78세 고령인 바이든 후보가 스스로를 ‘전환기 후보’로 칭하고 있어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면 2024년에는 도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역대 45명의 미 대통령 중 14명(31.1%)이 부통령을 거쳐 백악관 주인에 올랐다. 부통령직이 세계 최고 권력자가 되기 위한 최단 경로일 수 있다는 의미다. 2017년 첫 상원의원 배지를 달았지만 단번에 세계적 거물급 정치인으로 발돋움한 해리스 의원의 행보가 80여 일 앞으로 다가온 미 대선 판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 해리스, 페라로·페일린과 달리 유리천장 깰까
해리스는 미국의 첫 여성 부통령이라는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나선 세 번째 도전자다. ‘금녀의 구역’ 대선판에 발을 디딘 첫 여성은 1984년 대선의 민주당 부통령 후보였던 제럴딘 페라로(1935∼2011). 이탈리아계 이민자 후손으로 당시 뉴욕주 3선 하원의원이었던 그는 여성평등 입법 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월터 먼데일 민주당 대선후보는 높은 인기를 누리던 현직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에게 지지율이 크게 밀리고 있었다. 정공법으로는 가망이 없다는 판단하에 그가 꺼낸 카드가 ‘최초의 여성 부통령 후보’였다.

페라로는 수락 연설에서 “이걸(여성 부통령) 해낼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며 여성 유권자의 지지를 호소했다. 비록 ‘먼데일-페라로’ 조합은 본선에서 ‘레이건-조지 부시’ 조에 패했지만 페라로는 여성들의 소액 정치자금 후원 붐을 일으켰다.

2008년에는 공화당의 존 매케인 대선 후보가 알래스카의 최초 여성 주지사였던 세라 페일린을 부통령 후보로 깜짝 발탁했다.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은 힐러리 클린턴 뉴욕주 상원의원과 버락 오바마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이 끝까지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매케인 캠프 측 역시 클린턴을 지지하는 여성 표를 분산시키기 위해 페일린을 선택했다. 다만 페일린의 권력형 비리 의혹이 불거지고, 그의 고교생 딸의 임신 논란까지 겹치면서 매케인 지지율에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이 조합 역시 본선에서 ‘오바마-바이든’조에 패했다.

해리스 의원은 모두 백인 여성이었던 페라로나 페일린과 달리 최초의 비백인 부통령 후보다. 페일린 전 주지사는 해리스의 지명 소식에 트위터로 “당신을 바꾸려는 기만적인 사람들을 무시하라”며 당적에 관계없는 축하를 보냈다.

해리스 의원은 11일 후보 지명 수락 당시 민주당의 상징 색깔인 푸른색 옷을 입었다. 반면 페라로와 페일린 후보는 모두 수락 당시 흰색 옷을 입었다. 20세기 여성 참정권을 주장했던 영미권 여성 운동가들이 흰색 옷을 입고 연대의 메시지를 강조한 것을 차용했다. 2016년 미국의 최초 여성 대통령 후보가 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2019년 미 역대 최연소 하원의원이 된 민주당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도 흰옷을 택했다.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먼저 고군분투한 여성에게 존경을 표하려는 의미로 풀이된다.

○ 부통령 위상도 갈수록 강화
미 초대 부통령인 존 애덤스는 부통령직을 ‘인간이 만든 가장 하찮은 자리’라고 자조했다. 훗날 대통령이 된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 역시 부통령 시절에는 “내 일은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에 가는 것”이라고 냉소했다.

이처럼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부통령은 지역 안배 도구로 쓰인 후 백악관에 입성하면 무시당하는 존재였다. 북동부 매사추세츠주 출신인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남부 유권자를 사로잡기 위해 50개 주 중 캘리포니아(55명)에 이어 선거인단이 두 번째로 많은 텍사스(38명) 출신의 린든 존슨을 부통령 후보로 골랐다. 남부 조지아 출신으로 민주당 대선 후보치고는 보수 성향이 강한 편이었던 지미 카터 대통령 역시 북부 미네소타 출신이며 진보 성향이 강한 먼데일 후보를 택했다.

대통령의 ‘병풍’ 정도로 취급되던 부통령의 위상을 바꾼 인물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앨 고어 부통령,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의 딕 체니 부통령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고어의 전문 분야로 꼽힌 환경 정책에 방대한 재량권을 줬다. 체니 부통령은 아예 ‘부시는 얼굴마담, 진짜 권력자는 체니’란 말을 들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9·11테러 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침공, 신보수주의자 ‘네오콘’의 득세 등 미 외교안보 정책의 상당수를 사실상 체니 부통령이 관장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초선 상원의원에서 곧바로 백악관 주인이 된 버락 오바마 대통령 역시 자신보다 19세가 많고 36년의 상원의원 경험을 지닌 워싱턴 정계의 백전노장 바이든을 파트너로 맞아 경험 부족을 보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독실한 복음주의 기독교도이자 6선 하원의원인 마이크 펜스를 부통령으로 맞아 ‘워싱턴 아웃사이더’인 자신을 반신반의하는 공화당 주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 올해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하자마자 펜스를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책임자로 앉혔다.

이처럼 21세기 미 부통령은 과거와 달리 대통령의 의사 결정 및 정책 운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복잡다단해지면서 대통령 1명이 모든 사안을 처리하고 관장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 바이든 여론조사 우위 vs 트럼프 ‘외교 달인’ 강조
바이든 후보는 최근 지지율 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꾸준히 앞서고 있다. 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6년 대선 때도 여론조사 열세를 뒤집었듯 현재 판세로 최종 승자를 점치면 안 된다”는 의견과 “올해 여론조사는 4년 전과 다르다”는 반론이 맞선다.

여론조사회사 파이브서티에이트에 따르면 바이든 후보는 2월 말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보다 평균 3.8%포인트 앞섰다. 이 수치는 이달 8.3%포인트로 늘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바이든의 지지율 자체는 큰 변화 없이 5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즉 바이든의 지지율이 올라서가 아니라 인종차별 반대시위 격화, 코로나19 부실 대처 논란 등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진 덕을 본 셈이다. 친민주당 선거전략가 중에서도 민주당이 이번 대선에서 ‘낙승’이 아닌 ‘초접전 후 승리’를 기록할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달리 말하면 코로나19 백신 개발 성공, 하반기 경제 회복 등이 있으면 트럼프 측의 반격 기회가 있다는 뜻도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1971년 아랍에미리트(UAE) 건국 49년 만에 UAE와 이스라엘의 수교를 이끌어내며 ‘협상 달인’ 이미지를 과시했다. 대선까지 남은 80여 일간 이스라엘이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등 더 많은 아랍 국가와 수교를 맺을수록 그의 재선에도 유리한 상황이 조성된다.

반면 공영라디오 NPR는 4년 전과 지금이 다르며, 특히 민주당 내 이탈 표가 상당히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4년 전 민주당 경선 당시 당내 주류와 중도 유권자는 클린턴 후보를, 진보 유권자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지지했다. 이후 샌더스 의원 지지자의 상당수가 클린턴 후보를 찍지 않아 트럼프 당선에 기여했지만 올해는 ‘반(反)트럼프’ 기치로 뭉쳤고 4년 전만큼 내분 양상도 뚜렷하지 않아 당내 이탈 표가 적다는 의미다. 바이든 후보는 클린턴 후보만큼 ‘안티’가 많지도 않다. NBC방송 조사에서 클린턴 후보를 ‘매우 비호감’이라고 한 응답자는 43%, 바이든 후보를 ‘매우 비호감’이라고 한 사람은 33%였다.

○ 트럼프, 선거부정 의혹 제기로 퇴임 후까지 대비

지지율에서 밀리는 트럼프 대통령은 거듭 우편투표 부정의혹 제기 및 선거 불복을 시사하며 지지자 결집을 꾀하고 있다. 그는 13일에도 “북한, 러시아, 중국, 이란 같은 나라들이 투표용지를 가로챌 수도, 위조 투표용지를 인쇄할 수 있다. 이들 나라에 미 우편투표 개입은 매우 쉬운 방법”이라며 외세가 우편투표에 개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코로나19 부양책에 총 250억 달러(약 30조 원)의 우편투표 및 우체국 지원자금이 포함된 것을 두고도 분명한 반대 의사를 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돈은 기본적으로 선거자금”이라며 “우리가 양보하지 않으면 돈을 받을 수 없고 우편투표를 할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우편투표(mail-in-voting)는 해외주둔 미군이 주로 실시하는 부재자투표(absentee ballot)의 확대 개념이다. 질병, 해외근무 등으로 투표소에 갈 수 없는 유권자가 미리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한 후 우편으로 보내는 형식이다.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현장투표와 달리 투표용지 발송, 접수, 개표 등 일련의 과정에 빠르면 며칠, 길게는 몇 주가 걸린다. 품이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노동집약적 제도인 데다 50개 주마다 처리 과정도 제각각이다.

현재 오리건,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하와이, 유타, 워싱턴, 버몬트, 네바다, 몬태나 9개 주와 수도 워싱턴이 관내 모든 유권자에게 자동으로 투표용지를 발송하는 ‘보편적 우편투표’를 실시한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주소지인 남부 플로리다를 비롯한 36개 주는 특별 사유가 없이도 부재자투표를 허용하거나, 코로나19를 부재자투표 사유로 인정한다.

트럼프 캠프 측은 우편투표가 저소득층, 비백인의 투표를 용이하게 해 민주당에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주요 수혜자는 자가 운전이나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운 노인층이고, 이들이 주로 지지하는 공화당이 득을 볼 수 있다는 반론도 상당하다. 1996∼2018년 22년간 주요 선거 결과를 분석한 스탠퍼드대 연구진에 따르면 보편적 우편투표의 정파적 영향은 거의 없었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단순히 이번 대선만을 위한 포석이 아니라고 진단했다. 그는 “부정선거 여론을 계속 형성해야 향후 있을지 모르는 재판에서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재임 내내 “국정을 사업에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터라 퇴임 후 제기될 각종 소송에 대비해 ‘억울하게 대통령직을 뺏겼다’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한다는 의미다.

임보미 bom@donga.com·김예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