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서양식 양복을 받아들인 것은 이로부터 10여 년이 더 지난 1894년 갑오개혁 이후다. 1895년 단발령이 내려졌고 1896년 고종의 칙령으로 서양식 육군복장을 제정했다. 1900년에는 문관들의 관복도 일본이 전수한 서양식으로 바꿨다. 1898년 배재학당이 검정 양복 스타일의 교복을, 1907년 숙명여학교가 자주색 원피스로 된 서양식 교복을 채용했고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는 한복 교복이 금지돼 양복식 교복이 퍼졌다.
▷‘상의와 하의를 같은 천으로 만든 한 벌의 양복’으로 대표되는 양복 정장은 한국의 현대사와 호흡을 함께하며 일상 속에서 격식을 갖춘 옷차림으로 정착했다. 경조사나 중요한 만남, 공적인 행사, 면접 등 TPO(시간·장소·상황)에 맞춰, 패션과 의전 사이를 오가며 드레스코드를 충족해 줬다.
▷양복, 특히 50대의 남성이 입은 양복은 최근 기성세대의 권위나 관행과 동의어가 돼 뭇매를 맞기도 했다. 이달 초 국회 본회의에 빨간 원피스를 입고 나타나 논란의 중심에 선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국회 권위가 양복으로 세워지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관행이나 TPO가 영원히 한결같은 것은 아니라고도 했다. 일할 수 있는 복장이면 된다는 주장이다.
▷요즘은 맞춤정장보다 경제적인 기성복이 대세지만 양복의 본고장 유럽에서는 여전히 맞춤양복을 선호하는 문화가 남아 있다. 맞춤정장 가게가 즐비한 영국의 새빌로(Savile Row) 거리는 ‘원탁의 기사’를 모티브로 한 영화 ‘킹스맨’의 무대이기도 하다. 인류를 위협하는 악의 무리를 막아내는 조직의 핵심에 양복점이 등장하는 상상력에서, 유럽사회가 갖는 장인들에 대한 존경과 경외가 슬쩍 엿보였다. 양복과 언택트 시대의 복장, 합일점을 찾을 수 있을까.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