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방송된 MBC ‘나 혼자 산다’에서 평소와 다름없는 분량으로 나온 기안84. ‘나 혼자 산다’ 화면 캡처
최고야 문화부 기자
“제작진은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입장 발표하세요.”
MBC ‘나 혼자 산다’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기안84(본명 김희민·36)의 웹툰 ‘복학왕’에서 불거진 여성 혐오 논란이 그가 출연하고 있는 ‘나 혼자 산다’로까지 일파만파 번졌다. 11일 문제가 된 웹툰이 공개된 후 누리꾼의 항의가 거세지자 기안84가 13일 사과했지만 논란은 더 커졌다. ‘나 혼자 산다’에서 하차하라는 의견이 빗발치는데도 14일 방송분에서 기안84의 모습은 그대로 전파를 탔기 때문이다. 기안84를 클로즈업한 장면도 다수 나왔다. 편집을 통해 기안84의 분량을 줄이거나 그의 출연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는 과정은 전혀 없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상시 모습 그대로 나온 것이 방송 하차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기안84가 ‘선 넘는’ 혐오 발언을 반복해도 제재할 방법이 없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 민원이 접수되면 웹툰자율규제위원회에 자율 규제 요청을 할 수 있는데, 예술적 표현물에 대한 자율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시정 권고만 가능할 뿐 이행을 강제할 수는 없다.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주고, 작가의 실수를 용인해주는 사회 분위기에서 개선을 기대할 수 있는 건 작가 자신의 엄격한 잣대다. 단순히 ‘웃기려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특정 집단을 차별하는 행위는 지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젊은 여성이 능력보다 귀여움을 앞세워 취업에 성공한다거나, 나이 든 여자는 매력이 없는 존재로 그리는 등 그동안 각종 방송에 출연하며 인기를 얻은 공인으로서의 기안84가 보여준 인권 감수성은 낙제점에 가깝다.
기안84의 이 같은 논란을 매번 묵과해온 MBC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기안84의 여성 혐오 표현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하차 요구가 나왔지만, MBC는 별다른 조치 없이 유야무야 지나갔다. ‘나 혼자 산다’는 혼자 사는 1인 가구의 절대적 공감을 기반으로 2013년부터 큰 사랑을 받아온 MBC의 간판 예능이다. MC 전현무와 개그맨 박나래가 ‘나 혼자 산다’ 출연으로 각각 2017년, 2019년 MBC 연예대상까지 받았다. ‘나 혼자 산다’가 이번에도 시청자들의 요구를 외면한다면 여성 혐오 논란으로 불편함을 느낀 시청자들에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고야 문화부 기자 be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