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안보 분야 석학 그레이엄 앨리슨 美하버드대 교수
국제정치·안보 분야 석학인 그레이엄 앨리슨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미중 관계가 더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는 만큼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한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 제공
앨리슨 교수는 “미중 관계는 악화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며 “새로 부상하는 강대국이 기존 강대국의 자리를 위협하면 반드시 엄청난 경고음이 울린다. 인류 역사에서 계속 되풀이됐던 일”이라고 지적했다. 인터뷰는 13일 e메일을 통해 이뤄졌다.
―지난달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중국의 위협을 괴물 ‘프랑켄슈타인’에 비유했다.
“지난 한 세대 동안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 정권은 모두 중국을 ‘친구’ 내지는 ‘파트너’로 인식했다. 지금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물론이고 양당 모두 중국을 좋게 말해 ‘경쟁자’, 나쁘게는 ‘적’으로 여긴다. 만약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China Great Again)’라는 야망을 달성하는 데 실패하지 않는다면 중국은 계속해서 서열 1위인 미국을 위협하고 도전할 것이다. 만약 시 주석이 이 게임에서 승리한다면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동아시아의 지배적인 파워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미국은 점점 더 중국의 부상에 당황하게 될 것이다.”
“유사점도 있지만 차이점이 더 많다고 본다. 무엇보다 경제적 비중이 다르다. 옛 소련의 경제 규모는 미국의 절반을 넘은 적이 없다. 중국은 구매력평가(PPP) 기준으로 이미 미국을 추월했다. 미국보다 20%가량 크다. 또 소련의 무역은 동유럽 위성국가들로 제한됐고 세계 경제에서도 철저히 고립돼 있었다. 하지만 중국은 지금 세계 경제의 중추 역할을 한다. 정치 이념도 많이 다르다. 소련은 전 세계의 공산주의 혁명을 추구했지만 중국(공산당)은 그냥 중국만 지배하고 있다.”
현재 미중 관계가 20세기 냉전 시대와 다르다는 것은 앨리슨 교수를 비롯한 많은 국제안보 전문가가 동의하는 부분이다. 과거 미국과 소련은 군사 및 과학기술, 체육 등의 분야에서 주로 경쟁을 했다. 현재 미국과 중국은 이런 분야 외에도 경제 무역 언론 등을 포함한 전방위적인 측면에서 대립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양측이 교역 등에서 상호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설사 미중의 극단적 대립이 발생한다고 해도 한쪽의 일방적 승리나 붕괴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중국이 미국 국채를 대량 보유하고 있고, 미국 또한 희토류 등 전략물자 수입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 의존하는 만큼 상대방을 파멸로 몰아넣는 일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양국이 정말 전쟁을 벌일까.
“미중이 군대를 동원한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얘기일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인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중국을 계속 ‘악마’로 몰아가고, 중국은 소위 중국몽(中國夢)을 달성하기 위해 계속 반격을 하는 상황이다. 과거 역사에서는 이런 상황일 때 실제로 전쟁이 자주 발생했다는 점을 두 나라가 깨달아야 한다.”
“강대국끼리 바로 충돌해서 전쟁이 발발하는 사례는 드물다. 그 대신 의도치 않았던 행위, 제3국의 도발, 평소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쉽게 수습될 사건들이 연쇄 반응의 악순환을 일으켜 강대국 또한 이에 합류하는 형태를 띤다. 양국 갈등의 최전선에 있는 중국 최대 통신업체 화웨이를 보자. 미중 관계가 계속 악화하면 중국이 대만에 쳐들어가 반도체 공장을 장악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대만 TSMC는 최근 미국의 압박에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공급을 중단했다. 앨리슨 교수의 말은 중국이 산업 생산에 필요한 반도체를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대만에 군사 공격 등 강경한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앨리슨 교수는 이에 대한 추가 질의에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거듭 밝혔다.
―그렇다 해도 양국이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드러난 ‘사실(fact)’만 놓고 봐도 지금은 충분히 위험한 상황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각국이 객관적인 팩트를 주관적으로 인식하면서 더 위험한 상황이 초래된다. 오해가 쌓이고 오판이 늘어나는 것이다. 만약 한쪽이 상대방의 진의와 야욕이 무엇인지를 한번 판단하게 되면, 이후 상대방의 모든 행동이 그런 편견을 확인하는 쪽으로 해석된다.”
“아무리 관계가 적대적이더라도,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자살 행위라는 게 엄연한 사실이라면 결국 ‘협력적 경쟁’으로 갈 수밖에 없다. 우린 냉전을 겪으면서 우리가 서로 아무리 달라도, 핵전쟁을 피하려면 서로 함께 협력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옛날 얘기를 좀 하자면 나는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국방장관 특별보좌관으로) 일한 적이 있다. 그 서슬 퍼런 반공주의자(레이건 대통령)가 냉정히 현실을 자각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다. 그는 항상 입버릇처럼 “핵전쟁은 이길 수도 없고, 그러므로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양국은 앞으로 서로 어떻게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고 보나.
“미국과 중국은 두 나라가 힘을 합치지 않으면 안 되는 공통의 문제도 있다. 지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므로 양국은 불편하더라도 상호 간 파트너십(그게 아무리 제한된 파트너십이라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런 깨달음을 통해 양국은 서로와의 관계를 어떻게 관리할 수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고대 중국에서 송나라와 거란이 외교 협정을 통해 더 이상의 전쟁을 피하고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은 사례를 눈여겨봐야 한다.”
―조 바이든 미 민주당 대선후보가 선거에서 승리하면 미중 관계는 어떻게 될까.
“중국은 이번 미국 대선에서도 핵심 이슈가 돼 버렸다. 정치권에는 ‘국가 안보에 관한 한 상대보다 강경하게 나가야 한다’는 금언이 있다. 그래서 두 후보 모두 상대가 중국 공산당에 너무 소프트하다는 공격을 하고 있다. 그래서 서로 더 경쟁적으로 중국에 강경 일변도로 나가려 하고 중국을 악마화하는 데 기름을 붓고 있다. 이런 선거 분위기 때문에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한동안 미중 관계의 악화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바이든 후보의 특성을 감안했을 때 그는 중국에 대한 더 새로운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자 중국에 대한 의존도도 높다. 지금 한국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나.
“아프리카에 ‘코끼리가 싸울 때 풀잎은 사정없이 밟힌다’는 속담이 있다. 한국은 두 투키디데스 라이벌(미국 중국) 중간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 한국전쟁 때도 중국이 개입한 이후에는 남북한 군인에게 죽은 한국인보다 미군과 중국군에 의해 죽은 한국인이 더 많았다. 미중 간 갈등은 한국의 이익에 바로 직결되는 문제다. 양국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지 스스로 연구해야 한다.”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앞서 말했듯이 미중의 군사 충돌은 반드시 미국이나 중국에서 비롯되지 않을 수 있다. 그보다는 제3국 또는 우방국을 둘러싼 갈등에서 촉발될 수 있다. 1950년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예전에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관계 개선을 위해 다리를 놓은 것을 높게 평가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한국의 이런 역할이 (미중 간의 관계에서도) 앞으로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1940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출생
△1968년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1977∼1989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학장
△1985∼1987년 국방장관 특별보좌관(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1993∼1994년 국방 차관보(빌 클린턴 행정부)
△1995∼2017년 하버드대 벨퍼국제문제연구소 소장
△저서 ‘결정의 본질’ ‘예정된 전쟁’ 등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1968년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1977∼1989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학장
△1985∼1987년 국방장관 특별보좌관(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1993∼1994년 국방 차관보(빌 클린턴 행정부)
△1995∼2017년 하버드대 벨퍼국제문제연구소 소장
△저서 ‘결정의 본질’ ‘예정된 전쟁’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