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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에 발자국 찍는다, 이름없는 영혼을 위해…

입력 | 2020-08-19 03:00:00

[한국미술의 딥 컷]〈5〉 땅위에서 스스로 붓이 된 작가 김주영
30대 후반 교수직 버리고 프랑스로 떠나… 지구촌 곳곳서 수십년간 노마드 프로젝트
모래성 쌓았다가 허물듯 ‘우리의 삶’ 표현




김주영의 예술은 정해진 형식이 없다. 주어진 공간에서 충돌을 빚어내며 조형 언어를 만든다. 흙을 딛고 선 작가 스스로가 붓이 된다. 그의 노마드 프로젝트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사진 속 ‘길’이다. 사진은 지난해 터키 카파도키아를 유랑하며 만든 작품이다. 김주영은 “어느새 광목천 수십 통이 쌓였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이미 있는 것이 아닌 스스로가 내는 것이 바로 길이다”라고 말했다. 아뜰리에흙 제공

김주영 작가

《온몸에서 나오는 예술이란 무엇일까. ‘20세기 다빈치’ 요제프 보이스는 삶 자체가 예술이라며 경계를 허물었는데, 우리는 여전히 박제된 미술만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예술가 김주영(72)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온몸에 안고 길 위에서 스스로 붓이 되길 자처한다. 한국 미술의 ‘딥 컷(Deep Cut)’, 숨은 보석인 김주영의 작품세계를 지면에는 시원하게, 동아닷컴에는 심층적으로 소개한다.》

30대 후반 홍익대 미대 교수직을 버리고 프랑스로 떠났다. 파리8대학에서 조형예술을 공부했다. 강의실 앞에서 한 교수를 기다렸다. 그 교수를 졸라 미학 수업을 들었다. 탈구조주의 철학자 질 들뢰즈(1925∼1995)였다. 운동화와 청바지만 남기고 모두 버린 삶을 살았다. 굶기를 밥 먹듯 했고 버려진 건물에서 작업도 했다. 김환기 화가의 부인 김향안 여사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지원해준 덕에 얼마간 버텼으나 이내 노마드(유랑) 생활로 돌아갔다.

그의 방황은 태생적 조건에서 출발했다. 돌아가신 줄 알았던 아버지가 좌익 활동을 하다 증발했다는 걸 성인이 돼서 알았다. ‘김주영’은 본명이 아니었고, 어릴 때 크레용을 주며 혼자 놀라고 했던 어머니의 당부는 정체를 들킬까 봐 두려운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김주영이 놓인 삶의 조건은 6·25전쟁이라는 한반도의 비극에서 출발한다. 이름도 없는 아버지. 역사의 수레바퀴에 송두리째 흔들린 개인의 삶. 1994년 파리 베르나노스 갤러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에서 그는 무명의 기생을 위한 제식을 올린 뒤 수십 년간 이름 없는 영혼을 위로하는 노마드 프로젝트를 이어갔다.

그는 언제나 흰 광목천에 검은 먹으로 발자국을 찍는다. 손에는 한 줌의 쌀이나 흙, 재가 들려 있다. 스스로 낸 길 끝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며 크고 작은 영혼들을 위로하는 그를 유럽에선 ‘동양에서 온 무당’이라며 신기하게 여겼다.

#문 세상의 모순을 풀 수 있는 ‘저편’을 작가는 상상했다. 온갖 이야기와 상상으로 만들어낸 마음속 공간의 상징이 바로 문(門)이다. 위부터 1985년 회화 작품 ‘서 있음’, 1995년 토탈미술관 개인전 ‘동구 밖’.

#거울 거울은 평면에 깊이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보는 사람이 스스로를 비춰 보게 만드는 장치다. 작가가 공간에 활용하는 일종의 물감과도 같다. 2013년 남프랑스와 알제리에서 진행된 노마드 프로젝트 ‘서사적 흔적이 있는 풍경 트라이앵글’.

#기억상자 ‘기억상자’는 작가가 길 위에서 만난 것들을 모아 굳힌 것으로 노마드 프로젝트의 부산물이다. 작가는 이들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한 줌의 재 이야기’라는 글귀를 붙였다. 위부터 기억의 고착(1996년), 한 줌의 재 이야기(2018년).

#창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볼 수 있는 창은 현실과 마음을 연결한다. 자개장 속 어머니의 유품을 에폭시로 굳힌 창은 저세상을 보는 통로다. 위부터 ‘창’(2000∼2013년), ‘송화강은 알고 있다―신경 고모’(2010년).

#제식 무명의 영혼을 위로하는 제식은 노마드 프로젝트에 빠지지 않는 중심 행위다. 위부터 ‘어느 기생의 영혼祭’(1994년, 파리), ‘떠도는 무명의 영혼들이여: 등잔불 祭’(2000년, 한국 DMZ).

서양 문명의 한계를 본 그는 2006년 귀국했고, 경기 안성 시골에 정착했다. 여전히 지구를 캔버스 삼아 스스로가 붓이 된 그는 평면과 문(門), 벽과 창(窓), 흑과 백, 바닥과 거울 등 충돌하는 소재를 통해 조형 언어를 생성해낸다.

모래성을 쌓았다가 허물듯 김주영은 예술을 한다. 그의 예술은 흰 천 위 발자국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마치 우리의 삶이 한 줌의 재로 돌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김주영 작가::
▽1948년 충북 진천 출생
▽1972년 홍익대 회화과(석사)
▽1992년 프랑스 파리8대학 조형예술학과(박사)
▽1994년 프랑스 파리 베르나노스 갤러리 ‘어느 기생의 영혼祭’
▽2000년 서울 남대문시장-DMZ ‘떠도는 무명의 영혼들이여’
▽2010년 중국 ‘송화강은 흐른다―신경 고모’
▽2019년 충북 청주시립미술관 개인전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