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영령과 광주 시민 앞에 부디 이렇게 용서를 구합니다. 부끄럽고 또 부끄럽습니다. 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 너무 늦게 찾아왔습니다.”
19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 참배에 앞서 사과문을 읽던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원고를 넘길 때면 손을 떨었고, 목이 메인 듯 원고를 읽다 자주 멈칫했다. 묘지 입구인 ‘민주의 문’ 앞에서 사과문 낭독을 마친 김 위원장은 이어 5·18민중항쟁추모탑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보수정당 대표가 광주에서 사과의 뜻으로 무릎을 꿇은 것은 처음이다.
● “일백번 반성”
김 위원장은 이어 “일백번이라고 사과하고 반성했어야 마땅한데 이제야 그 첫걸음을 뗐다”며 “5·18민주묘지에 잠들어 있는 원혼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사과문 낭독에서는 “작은 걸음이라도 나아가는 것이 한걸음도 나아가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의 충고도 인용했다. 브란트 총리는 1970년 폴란드 바르샤바를 찾아 유대인 추모지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인물이다.
자신이 전두환 정권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참여한 것에 대해서는 “광주시민과 군사정권에 반대한 국민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며 “다시 한번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김 위원장의 사과문 낭독이 끝나자 주변에 있던 한 시민은 “대표님 말씀이 맞다”며 박수를 쳤다. 반면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 학생들은 “통합당 망언 의원부터 제명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소리쳤다.
사과문 낭목을 끝내고 김 위원장은 지상욱 여의도연구원장, 통합당 김선동 사무총장, 송언석 비대위원장 비서실장, 김은혜 대변인과 5·18민주항쟁추모탑으로 나아가 15초간 무릎을 꿇었다. 브란트 총리와 같은 자세였다.
● 호남 공략 작업 궤도 올라
김 위원장의 광주 방문은 통합당 호남 공략의 핵심 작업 중 하나다. 통합당은 28석이 걸린 호남권 지역구에 후보자를 12명밖에 내지 못했고, 수도권 유권자의 30% 가량으로 추정되는 호남출향민 표 확보에도 실패했다. 결과는 21대 총선 참패.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은 “반쪽 정당으로 남아선 안 된다”고 강조하며 호남 민심 잡기에 당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날 행보에 대해 통합당 장제원 의원은 “당을 대표하는 분이 공식 사과하고 5·18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다짐한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이라고 호평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에서 폄훼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브란트 수상의 무릎 사과를 어깨너머로 보고 흉내낸 것”이라며 “온갖 누릴 것은 다 누리고 이제 와서 새삼 이 무슨 신파극인가”라고 했다. 통합당 행보를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호남 출신 여권 관계자는 “통합당의 호남 구애가 일회성이 아니라는 인식이 든다”며 “정운천, 이정현, 김덕룡 등 보수 정당에서도 호남 기반 정치인을 배출했다. 김 위원장의 광주행을 쇼라고만 치부하면 민주당의 호남 지지율이 빠지는 상황에서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했다.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