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개정안에 반발
심사지침은 원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야 하지만 ‘상당한 규모’ 등 애매한 표현이 확대돼 있어 ‘걸면 걸린다’는 것이다. 이달 3일까지 의견 수렴을 거친 공정위는 의견 검토와 전원회의 의결을 한 다음 개정안을 바로 시행할 계획이다.
19일 산업계에 따르면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근 부당 지원행위 심사지침 개정안에 대한 반대 의견을 공정위에 제출했다. 부당 지원행위는 기업 내부거래에서 특정 계열사에 이익을 몰아주는 행위 등을 말한다. 재계 관계자는 “심사지침은 모호하게 돼 있는 공정거래법상 부당 지원행위에 대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줘야 하는데 이번 개정안은 기존보다 더욱 모호하고 규제 대상이 확대됐다”며 “사실상 계열사 간 수의계약 전반이 공정위의 부당 지원행위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부당 지원행위 요건 중 하나인 ‘상당한 규모의 지원행위’다. 기존 지침에서는 ‘상당한 규모란 지원 객체가 속한 시장의 구조와 특성, 지원행위 당시의 지원 객체의 경제적 상황, 여타 경쟁 사업자의 경쟁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한다’라고 돼 있다.
하지만 개정안은 ‘상품·용역을 상당한 규모로 제공 또는 거래하는 것은 지원행위에 해당한다’라고 못 박았다. 여기에다 예시로 ‘수의계약 방식을 통해 유리한 조건으로 대부분 몰아주는 경우’를 새로 추가했다. 상세 내용에서는 기존 지침에 있는 시장이나 경쟁 사업자 부분은 지워버렸다.
이 때문에 공정위가 자의적으로 대다수 기업에 부당 지원행위 잣대를 들이댈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주요 대기업은 계열사에 부품, 용역 등을 조달하는 수직계열화를 해왔다. 글로벌 경쟁 등에서 유리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의 부품 계열사인 현대모비스는 내부거래 비율이 56.5% 수준이다. 삼성전자도 자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에 자사 제품 애프터서비스(AS)를 100% 맡기고 있다.
최근 무역장벽이 높아지면서 수직계열화 추세가 강해지고 있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정부가 소재부품의 국산화를 독려했고, 자금력이 있는 대기업이 국산화에 성공한 점을 치하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SK그룹은 최근 한 계열사가 반도체 소재 국산화에 성공했으며 계열사 간 소재·부품 거래를 늘리는 쪽으로 투자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반도체뿐 아니라 다른 산업도 외부 리스크가 커지면서 내부 공급처를 확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재계는 ‘상당한 규모’ 조항 외에 다른 부당성 입증 판단도 애매하거나 불합리하다고 호소한다. 개정안은 내부거래의 매출총이익률이 외부거래의 이익률보다 높으면 부당 지원행위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또 내부거래가 영향을 미치는 시장의 범위를 기존에는 ‘관련 시장’으로 했으나 개정안에선 ‘기업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속한 시장’이라고 바꿨다.
4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기업마다 시장이나 투자 상황이 다른데 이익률로 부당성을 판단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관련 시장’은 공정위의 다른 심사지침에서 정확한 산정 방식이 나오지만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속한 시장’은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 걸면 걸리는 것 아니냐”라고 우려했다.
허동준 hungry@donga.com·서동일 / 세종=남건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