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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백 5초에 보조금도… 고성능 전기차의 매력

입력 | 2020-08-22 03:00:00

프리미엄 콘셉트로 진화한 전기차
소형 많고 가성비 주력한 전기차, 덩치 키우고 1억원대 제품도 나와
정부 보조금 1000만원대 받거나 판매사 3000만원 할인혜택 제공
고급 전기차에 눈돌린 국내 소비자… 브랜드 유명세-승차감도 함께 누려




“한국도 다양한 세그먼트(자동차의 사이즈)의 고성능 전기차 시장이 열린다는 신호라고 본다.”

7월 수입차 신규 등록 대수가 발표된 이달 초, 독일 아우디가 출시한 순수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e-트론’의 판매량이 394대를 기록하며 전월 대비 15배로 늘자 한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그는 “소형 전기차 중심이던 한국 시장에서 1억 원이 넘는 전기차 수요가 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라고 덧붙였다. 국내 전기차 시장에 출사표를 낸 고성능 중·대형 전기 SUV들의 약진이 흥미롭다는 것이다.

국내 전기차 수요는 꾸준한 편이다. 올해 상반기(1∼6월)에 국내 승용 전기차 판매 대수는 1만6359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7% 감소했지만, 업계에서는 국산 브랜드의 신차 모델 부재와 보조금 축소 등의 여파를 고려하면 수요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라고 보고 있다.

그동안 국내 전기차 시장은 소형 전기차가 이끌어 왔다. 친환경차 보급 확대를 위한 수백만 원 이상의 정부 보조금과 화석 연료보다 저렴한 전기료, 친환경 차량에 대한 주차비 및 각종 세제 혜택 등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국내에 출시된 전기 SUV도 대부분 소형이었다. 현대자동차 코나 일렉트릭과 기아자동차 니로EV, 쏘울EV가 대표적이다.

○ 꿈틀거리는 고성능 럭셔리 전기 SUV 시장
그런데 최근 국내 전기차 시장에서는 눈여겨볼 만한 변화가 일고 있다. 경제성을 강조하던 기존 전기차 모델들과 달리 프리미엄 및 고성능 전략으로 승부를 거는 수입 고성능 전기 SUV 모델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낮은 가격과 실용성만으로 승부를 보지 않고, 주행 성능과 럭셔리 마케팅을 앞세워 고성능 전기차 시장을 형성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장에 포문을 연 첫 번째 주자가 테슬라다. 테슬라는 2018년 말 대형 전기 SUV인 ‘모델X’를 국내에 처음 공개했고, 지난해부터 국내 출고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지난해에만 399대를 팔았고, 올해 상반기(1∼6월) 126대를 팔며 꾸준한 판매세를 유지하고 있다. 테슬라가 모델X에 대해 국고 보조금 신청을 하지 않아 보조금 혜택이 없음에도 판매가 급증한 셈이다.

재규어도 지난해 1월 순수 전기 SUV ‘I-PACE’를 출시했다. 포뮬러 E레이스차인 ‘I-TYPE’에서 얻은 노하우로 개발된 제품으로 고성능 슈퍼카에서 파생된 럭셔리 중대형 전기 SUV다. 독일 완성차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지난해 10월 전기차 전용 브랜드인 ‘EQ’를 단 순수 전기 SUV ‘더 뉴 EQC’의 국내 판매를 시작했고, 최근엔 아우디가 전기 SUV ‘e-트론’을 국내에 출시하면서 고성능 럭셔리 전기 SUV 시장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들은 무엇보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약 5초 이내로 도달하는 주행 성능이 내연기관 고성능 차량 못지않다는 것이 장점이다. 또한 공식 판매 가격이 1억 원을 넘지만 EQC와 I-PACE는 지방자치단체에 따라 1000만 원 이상의 국고 보조금이 지원된다. 아우디 e-트론은 현재 전기차 보조금 지원 절차를 밟고 있는 상태지만, 딜러사 재량으로 2200만∼2900만 원의 할인과 각종 쿠폰 등이 제공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판매량도 꾸준히 늘고 있다. 벤츠 EQC는 올해 1분기(1∼3월)까지는 월 10대 미만으로 팔렸지만, 보조금 혜택을 받기 시작하면서 지난달에만 151대를 팔았다. 아우디 e-트론은 6월 24대 판매에서 지난달 394대를 팔아 판매량이 약 15배 증가했다. 전기차의 고성능화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e-트론의 상반기 글로벌 판매 대수는 1만7641대로, 전년 동기 대비 판매량이 86.8%나 늘었다.

○ 주행 성능과 럭셔리 브랜드, 친환경 모두 잡아라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 같은 고성능 전기 SUV의 약진에 대해 주행 성능과 고급차 이미지, 거기에 친환경 차량에 대한 관심 제고 등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우선 단순히 경제성 있는 전기차를 끈다는 개념이 아니라 슈퍼카 못지않은 주행 성능과 각종 첨단 기술이 더해진 미래차라는 점이 매력이라는 것이다. 순간적인 가속과 더불어 오토파일럿 및 자율주행 어시스트 기능 등 첨단 기술이 장착돼 있다. 또한 기존 프리미엄 완성차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고성능 전기차로까지 이어진다는 분석도 있다. 테슬라 관계자는 “많은 고객들이 차량 구입 시 테슬라라는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미래 지향적인 가치와 더불어 슈퍼카급의 주행 능력을 고려한다”며 “기존에 벤츠나 아우디 등의 브랜드를 좋아했던 고객들이 전기차도 따라 가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운전자들이 고가의 차량을 몬다는 점에 더해 환경과 미래를 생각하는 운전자란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도 고성능 전기차를 선택하는 이유라는 시각도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관계자는 “신규 고객들 중에서는 내연기관 SUV를 끌다가 전기차 SUV로 넘어오신 분들이 꽤 많다”며 “효율성과 친환경성, 거기에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까지 고루 갖춘 차량을 경험하려는 고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고성능 전기차의 완전 충전 시 주행 거리가 다른 전기차들에 비해 100km 이상 짧다는 것이 단점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에 업체들은 이러한 점을 회생제동장치 기능 강화 등으로 극복하고 있다. 회생제동장치는 차량이 제동을 할 때 전기에너지를 새롭게 얻도록 하는 장치다. 패들 시프트를 이용하거나 액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떼면 자동으로 구동용 배터리가 충전되는 식이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 발생하는 에너지를 회수하는 최신 시스템을 적용한 차량도 있다. 회생제동 기능을 운전자가 잘 사용할 경우엔 최대 30% 이상 주행거리를 더 늘릴 수 있다는 게 업체들의 설명이다. 한 수입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공식적인 기록은 아니지만, 자체 실험 결과 회생제동 기능 등을 잘 이용할 경우 고성능 SUV 전기차로도 1회 충전만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약 400km를 한 번에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더욱 다양해질 전기차 시장
국내 전기차 시장에는 앞으로 다양한 세그먼트의 전기차들이 계속 출시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프랑스 완성차 업체 르노는 소형 전기 해치백 ‘조에’를, 푸조는 전기차 ‘e-208’과 전기 SUV ‘e-2008’을 한꺼번에 출시했다. 조에와 e-208은 유럽 내 전기차 판매량 1, 2위를 다투는 베스트셀링 모델이다. 푸조 전기차는 국고 보조금 600여 만 원을 지원받으면 3000만 원대에 살 수 있다는 매력 덕분에 사전 계약만 200대를 넘어섰다.

현대·기아차도 중·대형 전기 SUV 출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차는 최근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 적용된 순수 전기차 브랜드를 ‘아이오닉(IONIQ)’으로 정하고 라인업 강화 계획을 밝혔다.

현대차는 내년 현대차 ‘포니 쿠페’를 재해석한 준중형 CUV(콤팩트유틸리티차량) ‘아이오닉5’를 출시한다. 2024년경에는 대형 전기 SUV ‘아이오닉7’을 선보이고,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의 ‘GV70’ 전기차도 수년 내에 출시할 계획이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