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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살아 있음을 느낀다”

입력 | 2020-08-22 03:00:00

◇최전방의 시간을 찍는 여자/린지 아다리오 지음·구계원 옮김/472쪽·1만9800원·문학동네




시리아 내전 상황이 심각해진 2012년 말, 시리아에 거주하던 쿠르드족 난민들이 포화를 피해 터키로 탈출하고 있다. 문학동네 제공

이 책은 워너브러더스가 판권을 사들여 영화화를 추진 중이다. ‘일과 사랑’ 정도의 제목도 가능할 것이다. 20대 여성이 40대 후반의 엄마가 되는 동안 직업과 사랑에 온몸을 불태운, 흔한 관용구를 빌면 ‘불꽃같은 삶’을 한 권에 담았다.

그 직업이 예사롭지 않다. 저자 아다리오는 사진기자다. 종군(從軍)이 특기다.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라크 침공, 리비아 혁명 등 21세기 가장 피비린내 나는 현장들에 있었다. 두 번 납치됐다가 석방됐고, 취재 중 심각한 차량 사고로 만신창이도 되어봤다. 자신이 고용한 현지 운전기사 두 명과 동료 기자들의 죽음도 목격했다.

생후 18개월 때 주저 없이 수영장에 뛰어들어 가족을 놀라게 했다는 그는 ‘아드레날린 의존증’일까. 같은 일을 하는 여러 기자들이 그렇다고 그는 말한다. “삶을 파국으로 몰아넣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이 직업은 사람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주저 않고 거듭 사선(射線)으로 달려갔다.

저자 아다리오(왼쪽)와 로이터 기자 출신이자 리히텐슈타인 공국 백작인 남편 폴. 

사진 저널리스트 살가두의 전시회에 가서 ‘보도사진과 다큐멘터리 사진에 일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한 이 초짜 사진가는 2000년 5월 처음 탈레반 치하의 아프가니스탄을 카메라에 담았다. ‘뉴욕 타임스에 사진을 싣겠다’는 것이 목표였다. 탈레반의 통치가 특히 여성을 옥죄고 있었지만 그 나름 평화로운 시절이었다.

다음 해 테러리스트가 모는 여객기가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하는 장면을 TV로 본 그는 미군의 침공이 시작된 아프가니스탄으로 다시 들어간다. 그 뒤 이라크를 침공한 미군을 따라간 길에서 차량 폭발 공격을 받고 일행이던 TV 카메라맨의 죽음을 목격한다. ‘전쟁 세계’로 가는 베이스캠프이자 안온한 세계였던 이스탄불도 거처 바로 앞이 테러의 불길에 휩싸이면서 일상과 일의 경계가 무너져버린다.

과장이나 허식이 느껴지지 않는 문장 속에서도 두 가지가 시종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하나는 저자의 대담함이다. 바그다드 외곽에서 첫 피랍을 당했을 때, 그는 반군이 미군을 로켓탄으로 공격하는 걸 보고 납치범들에게 ‘사진을 찍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다음 날 목숨이 붙어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탄성을 부르는 다른 한 가지는 저자의 ‘연애운(運) 없음’이다. 그의 부재를 틈타 바람기를 그치지 않던 남자, 약혼자와 그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던 우유부단한 남자…. 연애담은 책 분량의 10%가 될까 말까이지만 독자의 눈길을 붙드는 또 하나의 효과적인 유인 도구다.

그는 결국 자신의 일을 이해하는 일생의 짝을 만난다. 비록 남자가 ‘너무’ (실제로) 귀족이었고, 결혼식을 7주도 남기지 않았을 때 저자가 파키스탄에서 차량사고로 심각한 부상을 입고, 결혼 직후엔 리비아에서 동료들과 납치돼 매를 맞고 추행까지 당한 뒤에 간신히 풀려나기는 했지만, 저자는 ‘애정전선’에서도 결국 성공했다.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맥아더재단 펠로십에도 선정되며 인정받는 종군기자의 꿈을 달성했지만 그는 지금도 언제든 장비를 챙겨들고 뛰어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서로 다른 두 현실 속에서 사는 방법을 배웠다. 아이들이 뛰노는 런던의 공원과 전쟁의 현장을 오가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이것이 내가 선택한 길이다. 나는 평화 속에서 사는 동시에 전쟁을 목격하고, 인간의 악랄한 측면을 경험하면서도 아름다움을 기억하는 쪽을 선택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