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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불안한 도시여 안녕… 4년 준비한 귀농, 이참에 결단”

입력 | 2020-08-24 03:00:00

[농촌에서 찾는 새로운 미래]〈3〉코로나로 다시 뜨는 귀농귀촌




올해 5월 전남 나주로 귀농한 오지빈 씨가 블루베리 농장에서 수확한 열매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오 씨처럼 코로나19를 계기로 평소 꿈꾸던 귀농을 실천하거나 귀농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나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광주에서 공예 작가 겸 강사로 일하던 오지빈 씨(50·여)는 한적한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게 꿈이었다. 4년 전부터 틈틈이 전남 여러 지역을 돌아봤지만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올해 1월 말 국내에서 첫 발병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전시회와 강연이 줄줄이 중단되면서 일거리가 뚝 끊긴 것이다.

오 씨는 “이왕 놀게 된 거 이참에 진짜 귀농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3월 전남 나주시의 7273m² 규모 블루베리 농장을 사들인 오 씨는 두 달 뒤 남편과 이곳에 정착했다. 막연한 꿈으로 여겼던 귀농을 코로나19 때문에 실천한 것이다. ‘초보 농사꾼’인 그는 전 농장 주인의 도움을 받아 내년 첫 수확을 준비하고 있다.

○ 코로나19가 앞당긴 귀농

최근 나주에서 만난 오 씨는 농촌 생활이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럽다고 했다. 그는 “지난달 전 주인이 키운 블루베리를 따는 것을 도우면서 수확하는 기쁨이 어떤 건지 알았다”며 “내년에 내가 키운 블루베리를 수확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렌다”며 웃었다.

오 씨는 1주일에 한 번 나주시농업기술센터를 찾아 영농 교육도 받고 있다. 교육을 통해 몇 년 뒤 골드키위 같은 새로운 작물에 도전해볼 계획도 세웠다. 6, 7월 1년에 한 차례 수확하는 블루베리 농사는 여름 한철만 바쁘기 때문에 가을에 수확하는 골드키위를 같이 키우면 수입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귀농과 귀촌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인구 밀집도가 높아 집단감염 우려가 큰 도시보다 농촌을 안전한 주거지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오 씨처럼 코로나19 탓에 휴직을 하거나 일자리를 잃게 되면서 귀농과 귀촌을 실행에 옮기는 사례도 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실제로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고용 위축 등의 영향으로 귀농 인구가 크게 늘어난 적이 있다. 외환위기 여파로 1997년 1841가구였던 귀농 인구는 이듬해 6409가구로 급증했다. 금융위기 때인 2009년에도 전년(2218가구)의 약 2배인 4080가구가 귀농했다.

○ 귀농·귀촌 체험 교육도 인기

코로나19 이후 귀농과 귀촌을 체험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도 인기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10년 가까이 일하던 장예슬 씨(35·여)는 올해 5월 경북 상주로 귀촌했다. 우즈베키스탄인 남편과 결혼한 장 씨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두바이에서 부부가 모두 일을 하기 힘들어지자 귀국을 결심했다. 장 씨는 “코로나 사태로 불안하고 아이들도 어려서 도시보다는 청정한 농촌이 나을 것 같았다. 이미 상주로 귀농한 부모님을 따라 귀촌을 택했다”고 했다.

장 씨는 지난달 3박 4일짜리 농촌 탐색 교육에 참여해 귀농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귀농 교육을 받아보니 직접 농사를 짓는 것 외에 농업과 연관된 다양한 창업도 가능할 것 같았다. 장 씨는 “차근차근 준비해서 3년 안에 귀농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농식품부가 올해 처음 선보인 농업 일자리 체험 연계 교육에도 많은 신청자가 몰렸다. 코로나19로 외국인 일손이 부족해진 농촌과 휴직, 폐업 등으로 일자리를 찾는 도시 구직자를 연결해주기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지역별로 회당 30명씩 선발했는데 지난달 모집한 2기 프로그램에 서울에서 121명(경쟁률 4 대 1), 경기에서 66명(2.2 대 1)이 신청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단순히 일자리가 필요해서 온 사람도 있지만 주로 귀농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신청했다”고 설명했다.

○ 재택근무 확산한 일본은 귀촌 열풍

코로나 사태로 농촌이 주목받는 건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확대된 것과 맞물려 귀농, 귀촌 열풍이 불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코로나 귀촌’의 대표적 사례로 도쿄의 정보기술(IT) 대기업 인사부에서 근무하는 나가오 슈이치(長尾周一) 씨를 소개했다. 올 3월 코로나19로 회사가 텔레워크(원격근무)를 시행한 뒤 그는 도쿄 시부야의 맨션에 거의 갇혀 지냈다. 5월 일본 정부가 긴급사태를 해제한 뒤에도 회사는 텔레워크를 장려했다.

결국 나가오 씨는 6월 가나가와현 오다하라시로 옮겨왔다. 일본 전역의 임대주택을 골라 살 수 있는 서비스를 이용해 이 지역 오래된 민가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대문을 열고 나서면 곧바로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일본 지방자치단체들도 각종 지원을 앞세워 도시 이주민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6월 열린 전국 규모의 온라인 행사 ‘모두의 이주 페스티벌’에는 74개 지자체가 참여했다. 홋카이도 후카가와시는 330m² 규모 시유지를 980엔(약 1만1000원)에 제공한다. 사실상 땅을 무료로 줄 테니 와서 집을 짓고 살라는 뜻이다.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농업경제학 전공)는 “한국도 일본처럼 코로나19발(發) 재택근무가 더 확산되면 은퇴한 고령층 외에 젊은층도 지방 중소도시나 농촌으로 귀촌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주=주애진 jaj@donga.com / 도쿄=박형준 특파원 / 남건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