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설지씨 768쪽 가곡전집 출간, 고교때 음반으로 슈베르트 첫 만남 중창-합창-교회음악 등 모두 번역… 주인공 직업 자세한 설명도 돋보여 “라틴어 가사 곡들도 번역하고 슈만-브람스-베토벤도 도전해볼 것”
김설지 씨의 한자 이름은 ‘눈 가지’를 뜻하는 ‘雪枝’다. ‘겨울 나그네’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는 ‘흰색보다 싱그러운 초록색을 좋아한다’며 미소지었다. 김설지 씨 제공
77세의 음악애호가가 800곡 넘는 슈베르트의 성악곡을 번역해 국배판 768쪽 분량의 방대한 책으로 내놓았다. 전직 지리 교사 김설지 씨가 옮기고 엮은 ‘슈베르트 가곡전집’(동서문화사). 가곡뿐 아니라 중창곡, 합창곡, 오페라 아리아, 교회음악 등 가사가 붙은 슈베르트의 음악은 거의 모두 번역해 실었다.
“고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대학생인 오빠가 게르하르트 휘슈가 노래한 슈베르트 가곡집 ‘아름다운 물레방앗간 아가씨’ 전집 축음기 음반을 사오셨죠. 언니와 함께 날마다 들으며 슈베르트와 사랑에 빠지게 됐습니다.”
고등학교 때 배운 독일어를 소환해 시작한 작업에 자신이 붙었다. 한 편 두 편 번역한 오페라 대본을 인터넷 음악애호가 클럽에 올렸더니 찬사가 빗발쳤다. 내친김에 ‘첫사랑’ 슈베르트의 가곡을 번역하기 시작한 게 엄청난 작업이 됐다.
이 두꺼운 책에 대충대충은 없다. 가곡집 ‘아름다운 물레방앗간 아가씨’만 예로 들어도 슈베르트가 곡을 붙이지 않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까지 빠짐없이 번역했고, 주인공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인 ‘초급 도제(Geselle)’의 의미 등 상세한 주석을 붙였다. 주인공, 서술자, 시냇물 등 화자(話者)에 따라 적절한 어미를 선택해 물 흐르듯이 읽힌다. ‘겨울 나그네’ 중 ‘얼어붙은 시냇물 위에서’에선 흔히 ‘깨진 반지’로 번역되는 ‘zerbrochner Ring’을 ‘군데군데 끊어 빙 둘러놓은 돌’로 제대로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번역했다.
김 씨는 은퇴한 뒤 강원 화천군에서 전원생활을 만끽하고 있다. 애호박과 토마토를 돌보면서도 늘 휴대용 라디오로 음악을 듣는다. 그래도 만족은 멀었다.
“새로 입수한 해외 슈베르트 전집을 보니 제가 번역한 ‘알프스의 사냥꾼’ 노래에 두 연(聯)이 빠져 있더군요. 빠진 부분을 집어넣고, 슈베르트가 라틴어 가사로 쓴 곡들도 번역해 증보판을 낼 생각입니다. 그 다음? 슈만 가곡들을 번역 중이고, 브람스, 베토벤…. 눈도 어두워지고 체력도 달리는데, 마음이 급합니다(웃음).”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