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低)금리 시대에 12개월 된 딸아이를 위해 적금을 드는 것보다는 미국 주식을 사서 오래 갖고 있는 게 훨씬 낫겠더라고요.”
직장인 강모 씨(37)는 한 달 전 국내 증권사에서 주식 계좌를 만들고 구글 주식(알파벳A)을 500만 원어치 샀다. 지금은 수익률이 8%가 넘었다. 이제는 ‘액면분할 발표’ 등으로 관심이 집중된 미국 전기차 회사 테슬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강 씨는 “테슬라가 액면분할을 실시하면 주식을 조금씩 사서 모을 계획”이라며 “올 3월 미국 증시가 급락했을 때 구글 주식을 더 많이 못 산 게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강 씨처럼 미국 주식에 투자하려는 개인투자자들인 ‘서학(西學) 개미’들이 늘고 미 달러화 약세로 달러를 쟁이려는 수요가 가세하면서 국내 외화예금이 한 달 만에 다시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 외화예금, 석 달 만에 100억 달러 가까이 증가
2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개인, 기업 등이 보유한 외화예금은 874억 달러(약 104조 원)로 집계됐다. 이는 6월 말보다 28억7000만 달러 늘어난 규모다. 2012년 6월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다. 외화예금 잔액은 올 4월 781억8000만 달러에서 3개월 만에 92억2000만 달러 증가했다. 외화예금에는 내국인, 국내 기업, 6개월 이상 거주한 외국인, 국내 진출 외국 기업 등의 국내 외화예금이 모두 포함된다. 한은 관계자는 “2분기(4~6월)까진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달러를 갖고 있으려고 하는 수요가 많았던 반면 7월에는 해외 주식을 구입할 때 증권사에 맡기는 돈 등이 많이 늘면서 미 달러화 예금이 증권사를 중심으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전체 외화예금의 87.2%를 차지하는 미 달러화 약세도 외화예금이 늘어난 배경 중 하나다. 달러 값이 떨어지면 수출 기업은 대금으로 받은 달러 환전을 미루고, 수입 기업은 앞으로의 비용 지급을 위해 미리 사 둔다. 지난달 말 원-달러 환율은 1191원으로 6월 말(1203원)보다 12원 하락했다. 기업의 미 달러화 예금은 603억 달러로 처음으로 600억 달러를 넘었다.
● ‘서학 개미’의 해외주식 순매수 650% 급등
상반기 국내 주식 시장 상승을 이끌었던 ‘동학(東學) 개미’들의 미국 주식 원정은 하반기에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1일부터 이달 21일까지 국내 투자자들은 미국 주식 35억6062만 달러(약 4조2400억 원)어치를 순매수(주식을 판 금액보다 매입한 금액이 더 많다는 뜻)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4억7489만 달러)보다 650% 급증했다. 해당 기간 동안 국내 투자자는 2거래일을 제외하고 ‘순매수 행진’을 이어갔다.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돈 풀기로 미 증시가 강세를 이어가고 있는 데다 인터넷이나 온라인으로 해외주식을 간편하게 투자할 수 있게 된 영향이 크다. 애플 구글 테슬라 등 미 혁신기업에 직접 투자하려는 젊은 ‘서학 개미’들이 늘어난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도 “미국 주식 과열 논란이 있긴 하지만 유동성 흐름이 양호하고 산업 패러다임 변화 등을 감안하면 추가 상승 여력이 있다고 보는 투자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유동성 상황은 여전히 변수다.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과거 사례를 봤을 때 미국 금리가 오른 시기에 ‘버블’이 터진 사례들이 많다. 코로나19 재확산과 금리 인상 시기 등이 변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희창기자 ramblas@donga.com
김자현기자 zion37@donga.com
김자현기자 zion3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