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기틀 다진 리더십 재부각 ① 1993년 제약 프로젝트 첫 삽, 바이오팜-바이오사이언스 ‘잭팟’ ② 오일쇼크 극복위해 유공 인수… 섬유-석유 이어지는 수직 계열화 ③ 특혜시비 일자 이통사업권 반납, 공개매각때 참여해 텔레콤 키워
고 최종현 선대회장(왼쪽)이 1981년 초 내한한 아흐마드 야마니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담소를 나누는 장면. SK 제공
지난달 빌 게이츠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 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한국이 민간 분야에선 백신 개발 등에서 선두에 서 있다”며 이같이 밝혀 화제를 모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개발 지원에 나서고 있는 게이츠 회장이 SK바이오를 콕 찍어 기대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의 모회사인 SK케미칼 주가는 지난해 8월 4만2400원 저점을 찍은 뒤 24일 종가 기준 40만 원으로 급등했다.
앞서 올해 상장 ‘잭팟’을 터뜨린 SK의 또 다른 바이오 계열사 SK바이오팜은 신약으로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 한국 최초로 독자 개발한 뇌전증 치료제(세노바메이트)로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많은 사람들이 SK가 최근에야 바이오에 뛰어든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선대회장부터 이어진 그룹의 30년 숙원 사업이었다. 적자를 보면서도 연구개발(R&D)을 이어왔고 총수의 뚝심 투자가 빛을 본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 긴 안목의 투자가 그룹 주력사 꽃피워
26일 22주기를 맞는 최 선대회장은 SK그룹이 오일쇼크, 외환위기, 금융위기, 코로나19 등 숱한 위기를 돌파하며 재계 2위의 에너지·통신·반도체·바이오 기업으로 성장하는 단초를 마련했다. 올해 꽃피운 바이오만 아니라 1980년 대한석유공사(유공), 1994년 한국이동통신 인수 등으로 SK그룹의 ‘퀀텀점프’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반도체 역시 그룹의 30년 꿈이었다. 최 선대회장은 1978년에 선경반도체를 설립했으나 경영 환경 악화로 1981년에 회사를 접었다. 당시의 아쉬움은 아들인 최태원 회장이 2011년 말 하이닉스를 인수하며 풀었다. 인수 확정 직후 최 회장은 “반도체 사업에 대한 그룹의 오랜 꿈을 실현했다”고 밝힌 바 있다.
○ 특혜시비로 반납 뒤 통신기반 다져
“운(運)만으로는 큰 사업을 할 수 없다.”
최 선대회장은 타계 1년여 전인 1997년 한 인터뷰에서 유공 인수, 정보통신사업 진출(한국이동통신 인수) 등은 최소 10년 이상 준비한 결과물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재계 판도를 뒤흔든 두 차례 인수합병에 대한 특혜 시비를 반박한 것이다.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정부는 다시 제2이통사업자 선정을 추진했다. 김영삼 정부는 최 선대회장이 회장으로 있던 전국경제인연합회에 사업자 선정을 일임했다. 그러자 최 선대회장은 공정성 논란이 있다며 컨소시엄에 참여하지 않았고 신세기이동통신 컨소시엄(포항제철, 코오롱 참여)이 사업자로 선정됐다.
이후 공기업이던 한국이동통신의 주식 공개 매각이 진행되자 SK는 기회를 잡았다. 당시 주식 공개 매각 발표 이후 주가가 두 배 이상 뛰자 SK 내부에서는 부담이 크다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최 선대회장은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회다. 우리는 기업을 사는 것이 아니라 (통신사업 진출의) 기회를 사는 것”이라고 했다. 이때 23%의 지분을 4271억 원에 인수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국내 1위 통신사 SK텔레콤이다.
한국경영학회는 저서 ‘미라클 경영’을 통해 SK의 통신사업 진출을 이같이 평했다. “SK가 통신사를 인수하는 과정은 일반인의 예상과 달리 수많은 난관을 극복한 결과였다. 결과적으로 비관련 다각화의 성공 사례였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