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집 내부고발자 김대월 학예실장
역사학도인 김대월 학예실장은 지금 광복 이후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에 대한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다. 그는 “70년대 배봉기 할머니, 80년대 노수복 할머니가 증언했지만 우리 사회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광복 이후 할머니들을 방치한건 우리 책임”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늦었지만 나눔의 집, 정의기억연대 등이 생겨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기가 막힌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이진구 논설위원
―나눔의 집은 1992년에 생겼다. 그동안 숱한 감사가 있었을 텐데.
“2017년 이사회 영상을 찾았는데 이런 부분이 있었다. 이사장이 ‘후원금을 방만하게 관리해서 시설이 존폐 위기까지 갔는데 내가 (경기)광주시장도 만나 다 수습했다’는 장면이다. 우리가 국무총리실, 광주시, 경기도, 여성가족부, 국가인권위에 공익제보를 한 게 3월 10일이다. 우리는 제보만 하면 우리 역할은 다 한 거라 생각했다. 담당 공무원들은 난리가 나는 게 당연할 텐데… 3월 말쯤에야 경기도와 광주시 공무원들이 정식 감사는 아니고 제보자 얘기나 한번 들어보겠다며 왔다. 그런데 광주시 공무원은 출근도 안 한 스님에게 월급이 나갔는데, ‘밖에서 일했다면 문제가 없을 거다’라는 식으로 말했다. 경기도 공무원은 월급이 적어서 내부고발을 하는 거니 올려주면 해결된다고 하고.”
※ 김 학예실장은 2018년 나눔의 집에 입사했다. 내부고발자들은 1년간 안에서 싸웠으나 해결이 안 돼 3월 공익제보를 하게 됐다고 한다.
―공익제보자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여성가족부는 적극적이었나.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 건물 베란다에 버려진 할머니들의 유품. 생전의 생활용품, 직접 그린 그림, 학생들이 쓴 편지, 고 노무현 대통령이 선물한 다기세트 등 온갖 물건이 버려져 있었다.
―기울어진 침대에서 주무신다는 건가? 후원금을 88억 원이나 받고?
“지금 다섯 분이 계신데… 세 분은 집중치료실에 있다. 그중 두 분은 코 줄로 영양을 공급받고 있고. 인지 능력이 없는 상태인데 말이 집중치료실이지 의료 장비가 하나도 없다. 침대 하나뿐이다. 방에서 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곳에 계시는 것뿐이다. 그렇게 계시다가 돌아가시는 건데… 정말 이상한 일이지만 그동안 할머니 스무 분 정도가 이곳에서 돌아가셨는데 나눔의 집에서는 한 번도 기일을 챙긴 적이 없다. 돌아가신 날 남은 가족들과 할머니를 추억하는 분들이 모여 고인을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자리… 그런 게 없다. 할머니들을 위한 곳이 아니라 할머니들을 이용해서 돈을 모으는 곳이다.”
―치료나 간호는 어떻게 하나.
―할머니들 옷이나 머리는 어떻게 하나.
“옷은 사준 적이 없고 후원받은 옷만 입힌다. 더러 가족이 사오는 것도 있다. 신발은… 단화 한 켤레가 전부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어디를 가든 그거 하나로 버틴다.” (할머니들이 신발 한 켤레로 산다고?) “그렇다. 머리는… 자원봉사하시는 분들이 해준다. 나라에서 지원금 나오는 항목이 아니면 뭐 하나 나눔의 집에서 해주는 게 없다. 그리고 이런 내부 상황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높은 분들은 선물 쌓아놓고 사진이나 찍고 가지, 정작 할머니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보지 않는다. 2018년에 할머니 한 분이 경복궁이 보고 싶다고 했는데 사무국장이 추워서 안 된다고 하더라. 그때가 10월이었다. 근데 그 다음 달 원행스님 조계종 총무원장 취임식에는 세 분을 데리고 가 야외에서 두 시간 동안 떨게 했다.”
―행사에 할머니들을 동원하는 게 심한가.
“2018년 여름인데… 소장이 경기 광명시 행사에 할머니 한 분을 모셔가려고 했다. 근데 할머니가 아팠다. 간호사가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하니까 짜증을 내면서 광명시장 만나야 하는데 아프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더라. 안 되니까 다른 할머니를 준비시키라고 했는데 그분은 치매로 대소변을 못 가린다. 함께 가서 기저귀 갈아드릴 직원이 없다고 해서 결국 못 갔다. 내가 운전해서 소장을 모시고 갔는데 도착해서 광명시장에게 한다는 말이 ‘아이고 시장님, 우리 할머니가 갑자기 아프셔서 저도 병원에 가야 하는데 (시장님과의) 약속 때문에 왔다’고 하더라. 너무 가증스러웠다.” (할머니는 괜찮으셨나.) “병원에 가보니 대장 천공이었다. 그날 바로 대수술을 받았다.”
“그럴 리가…. 일반 요양원을 만들려고 한 거다. 나눔의 집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시설로 알려져 있지만 정관상으로는 ‘무의탁 독거노인을 위한 무료 양로시설 및 무료 전문요양시설, 미혼모 생활시설’로 돼 있다. 지금 계신 다섯 분이 돌아가시면 후원금을 받거나 법인을 유지할 방법이 없으니까 일반 입소자를 받기 위해 시설을 확충한 거다. 그런데 너무 뻔뻔한 게… 지난달 민관합동조사단이 한창 조사하고 있는 와중에 인근 면사무소에 공문을 뿌렸다. 65세 이상 남녀 주민 중 입소 가능자를 추천해 달라고.” (잠깐, 남녀라니? 할머니들이 살아계신데 남자를 받겠다고?) “정신 나간 거지…. 더군다나 공사도 부실해서 작년 증축공사가 끝난 뒤에 콘센트에서 물이 나왔다.” (비가 와서 지붕이 샜나.) “비 안 왔다. 그냥 돼지코 콘센트에서 물이 콸콸 나왔다. 무허가 업체가 했는데 증축공사를 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하지 않나? 광주시가 몰랐을까?”
―3월에 공익제보를 했는데 6월에 다시 청와대 국민청원을 한 이유가 뭔가.
“바뀌긴커녕 더 나빠져서…. 운영진이 내부고발자들의 서버 접근권을 막았다. 간호사 선생님은 업무에서 배제됐고.” (한 명뿐인 간호사가 업무 배제되면 누가 돌보나.) “그래서 얼마 전 퇴원한 할머니 한 분은 간호사 대신 나눔의 집 간부가 데려왔다. 의사와 처방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면 평소 드시는 약이나 몸 상태를 제일 잘 아는 간호사가 가는 게 당연하지 않나. 할머니는 정신이 온전치 않기 때문에 의사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도 못한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