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집권이 훌륭한 리더십을 뜻하는 건 아니다. 아베 총리는 평화헌법 개정과 러시아로부터의 북방영토 반환, 북한 납치피해자 문제, 도쿄 올림픽을 통한 경제 부흥 등을 추진했지만 무엇 하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장기집권이 가능했던 비결로는 흔히 ‘야당복(福)’이 거론됐다. 아베 정권의 폭주와 우경화 등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면서 ‘왜 정권이 바뀌지 않느냐’는 질문에 단골로 나오는 답은 “대안이 없다”였다. 자민당 내 총리 교체를 두고도 ‘포스트 아베는 아베’라는 말이 유행했다. 배경에는 일본 국민에게 트라우마로 남은 야당 집권 3년간의 기억이 자리하고 있다.
▷1955년 자유당과 일본민주당이 ‘보수연합’이란 명목으로 합당해 ‘자민당 체제’가 출범한 이래, 야당인 민주당이 제대로 정권을 잡은 것은 2009년부터 3년간이었다. 하토야마 유키오, 간 나오토, 노다 요시히코의 세 총리가 탄생했는데 그 기간 일본인들이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 이어졌다. 미국 중국과 외교 마찰을 빚는가 하면 엔화 가치 급등으로 기업 실적은 곤두박질쳤다. 설상가상으로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다. 사망·실종자 2만여 명에, 원전 폭발이 겹친 끔찍한 재난의 수습 과정에서 민주당 정권은 아마추어 정부의 민낯을 보여줬다.
▷지금도 아베 내각 지지율은 바닥 수준이지만 야당 지지율은 더 낮다. 23일 마이니치신문 조사에서 자민당 지지율은 29%, 제1 야당인 입헌민주당은 9%, 제2 야당인 국민민주당은 2%에 그쳤다. 여기에는 해온 방식, 알던 사이를 선호하는 일본인들의 보수적인 ‘의리 문화’도 한몫하는 듯하다. 아베 총리에게 피로감을 느끼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이나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같은 이들이 거론되지만 아베 스스로 권력을 내어주는 게 먼저다. 아베 총리는 어제도 병원에 갔다. 더 이상 ‘포스트 아베는 아베’가 아닐 것 같다.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