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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여기[2030 세상/김지영]

입력 | 2020-08-25 03:00:00


김지영 한화생명 라이프플러스랩

템플스테이로 충북 보은의 법주사를 다시 찾았다. 입사를 앞둔 2013년 방문 이후 꼬박 7년 만이다. 3시간 반을 달려 속리산 터미널에 닿았다. 불자는 아니지만 사찰 특유의 맑은 안락함이 심신을 정돈해주기를 기대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수행하는 마음으로 산에 올랐다. 정갈한 옷가지를 받아들고 배정받은 방에 들어섰다. 낮은 테이블과 다기, 책 몇 권이 전부인 단출한 방. 이 여백이 그리웠다.

짧은 휴식 뒤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법주사에 대한 간략한 소개, 합장, 묵언과 같은 기본적인 예절은 물론이고 머무는 동안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불교에서는 식사도 일종의 수행으로 보고 ‘공양’이라고 해요. 이 상이 차려지기까지의 과정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묵언하며 먹습니다.” 잊고 있었다, 식사 한 끼에도 감사하는 법. 감사도 근육이다. 쓰지 않으면 퇴화한다.

일과를 마치고 정수 물을 떠서 이른 소등을 한 방으로 돌아왔다. 차 한 잔을 우려 마시며, 어두운 불빛에 의지해 7년 전 이곳에서 쓴 일기를 찾아 읽었다. “면접에 합격하고 취직을 해도, 기다리던 ‘그날’은 오지 않았다. 실체가 없던 ‘그날’은 영영 오지 않을 그냥 ‘내일들’이었다. 이것만 끝나면, 이것만 잘되면, 하고 보낸 숱한 날들이 모여 어느덧 두 해를 넘겼다. 입사를 코앞에 둔 지금만 해도 벌써, 여행 계획이나 입사 준비, 그리고 더 멀리의 내일들을 위해 오늘을 ‘대기’한다.”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인턴십을 하고 취업을 준비하던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임시로 살았다. ‘시험 끝날 때까지만 견뎌야지’ 하듯 바쁜 일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모습으로. 내일 이사할 집에서 전등이 나간 채로 버티듯 잠시 머물듯이. 언젠가 올 ‘그날’을 기다리며 나는 늘 무언가를 위한 대기 상태였다. 원하던 회사에 합격하고 기쁨을 누리던 것도 잠시 어쩐지 허탈함이 밀려왔던 그해, 그 일기를 들춰 보고 화들짝 놀란 것은 오늘 나의 일기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였다. 어쩌면 같은 마음이 같은 곳으로 이끌었을까.

언제나 과정은 지난한데 성취의 달콤함은 야속하리만치 짧았다. 좋은 대학에 합격하면, 원하던 회사에 합격하면, 높은 점수에 도달하면, 언젠가 올 것 같았던 완벽한 ‘그날’은 결코 오지 않았다. 대입-취업-결혼, 나아가 이직을 거치면서 착실하게 정답을 골라왔다. 그 다음은? 우리는 모두 그 답을 알고 있다.

법정 스님은 말했다. ‘즉시현금 갱무시절(卽時現金 更無時節)’, “한번 지나가 버린 과거를 가지고 되씹거나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기대를 두지 말고, 바로 지금 그 자리에서 최대한으로 살라. 우리가 사는 것은 바로 지금 여기다.”―법정 ‘맑고 향기롭게’

행복은 성취가 아니라 과정이라 했던가. 그러므로 바로 지금 여기, 삶의 순간순간은 그 자체로 여정이자 도착지여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며, 다시 한 번 오늘을 살겠다.
 
김지영 한화생명 라이프플러스랩